배우 박강현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진행된 연극 '나쁜자석'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 밀어낼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그려낸 연극 '나쁜자석'은 오는 5월 2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1532(중종 27)∼1575년(선조 8). 조선 제13대 명종의 왕비이다. 성은 심(沈)씨이며 본관은 청송이다. 아버지는 청릉부원군 심강(沈鋼), 어머니는 전주 이씨 이대(李薱)의 딸이다. 슬하의 1남이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이다.
1532년(중종 27) 5월 심강의 맏딸로 태어나 11세에 두 살 아래인 경원대군의 부인이 되었다. 154
◇서울 노원구 공릉동 111 화랑타운 = 707동 6층 601호가 경매에 나왔다. 2000년 1월 준공한 11개동 436가구 단지로 10층 건물 중 6층이다. 전용면적은 84.65㎡, 방 3개 욕실 2개에 계단식 구조다.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서울여대입구)이 도보 7분 거리에 있으며, 북부간선도로, 태릉 중종왕비문정왕후릉과 가깝다. 공릉2동 주민센터,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 任氏, 1109~1183)는 고려 인종의 제3비로, 1126년 인종이 이모였던 두 왕비와 이혼하고 맞이하였다. 본관은 정안(전남 장흥)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 어머니는 수주(樹州, 인천시 부평) 이씨로 문하시중 이위의 딸이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외할아버지는 꿈에 황색 깃발을 집의 문에 세웠는데 깃발 꼬리가 궁궐 치미를 싸고
폐비 이씨 자매는 고려 17대왕 인종의 제1·2비로, 이자겸(李資謙, ?~1126)의 셋째와 넷째 딸이다. 이자겸은 이미 인종의 부왕 예종에게 둘째딸을 들인 바 있고, 그 딸이 바로 인종의 모후인 문경태후이다. 즉 폐비 이씨 자매는 인종의 이모로서 조카와 혼인하였다. 이자겸은 다른 성씨가 왕비가 되면 자신의 권세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무리하게 이 혼인을
문경태후 이씨(文敬太后 李氏, ?~1118)는 고려 16대 왕 예종의 제2비이다. 본관은 인주(현재의 인천광역시)이며, 아버지는 조선국공(朝鮮國公) 이자겸, 어머니는 해주 최씨로 시중을 지낸 최사추의 딸이다. 예종의 부왕인 숙종은 인주 이씨에게 세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자 정주 유씨 출신인 명의태후 1명만 왕비로 두었다. 그러나 예종은 다시 인주 이씨와 혼
하원군군 유씨(河源郡君 柳氏, 1079~1117)는 고려시대의 귀족부인이다. 평범한 귀족부인의 이야기가 역사서에 실리기는 어렵다. 이런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묘지명이다. 묘지명이란 죽은 이의 일대기를 돌 같은 데 써서 무덤 속에 함께 묻은 것으로, 고려시대 여성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씨 부인의 본관은 정주(황해북도 개풍군)이며 아
수로부인(水路夫人)은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년) 대의 인물로,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이다. 수로부인은 2수의 향가(鄕歌), ‘해가(海歌)’와 ‘헌화가(獻花歌)’의 주인공이다. 우선 ‘헌화가’와 관련된 일화를 보자.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러 가던 길이었다. 도중에 바다를 바위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둘러친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던
혜명왕후(惠明王后)는 신라 제36대 효성왕(재위 737∼742년)의 왕비이다. 혜명왕후는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이다. 김순원 세력은 성덕왕 대에 이어 효성왕 대에도 유력 귀족가문이었다. 김순원은 성덕왕 19년(720)에 그의 딸인 소덕(炤德)을 성덕왕의 후비로 들여보냈다. 효성왕은 김순원의 외손자이다.
김순원은 그의 딸 혜명을 효성왕 3년
신목왕후(神穆王后)는 내물왕 8세손인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欽運)의 딸이다.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년)의 두 번째 왕비이고, 제23대 효소왕(孝昭王, 재위 692∼702년)과 제24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년)의 어머니이다. 신문왕이 즉위한 해인 681년에 첫째 왕비의 아버지인 김흠돌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김
보도부인(保刀夫人)은 성은 박씨이고, 신라 제23대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의 왕비이다. 보도부인의 다른 이름으로는 ‘삼국유사’에는 파도부인(巴刀夫人), ‘울주천전리각석’에는 부걸지비(夫乞支妃)가 전한다.
법흥왕은 527년에 불교를 공인하고, 529년에 살생을 금지시킨 왕이다.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한 후에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고 출가
항상 말씀하시기를 “부인이 스스로 잘난 체하면 가정이나 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경계를 신중히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효종(재위 1649~1659)의 비 인선(仁宣)왕후의 행장에 있는 말이다. ‘항상 말씀했다’는 첫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조선의 다른 왕비들 행장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안순왕후 한씨는 조선 예종(재위 1468~1469)의 비이다. 처음에 예종의 후궁으로 왕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세자빈 자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왕비로 올라간 특이한 전력을 가졌다. 1461년 장순왕후가 세자빈으로 있다가 죽고 나서 1468년 예종이 즉위할 때까지 왕실은 6년 이상을 예종의 세자빈 없이 지냈다. 세종 때 현덕왕후 권씨가 세자빈 봉씨 폐출 후
명의왕태후 류씨(明懿王太后 柳氏: ?~1112)는 고려 제15대 숙종의 왕비이다. 본관은 정주(貞州·황해북도 개풍군)이며, 아버지는 유홍(柳洪), 어머니는 경주 김씨 김원황(金元晃)의 딸이다.
1077년 무렵에 문종의 셋째 왕자인 왕옹(숙종)과 혼인하여 명복궁주(明福宮主)라고 불렸다. 1083년 문종이 사망하고, 문종의 장자인 순종이 즉위하였다. 다시 3개
사숙태후(思肅太后) 이씨(생몰년 미상)는 고려 선종의 제2비이다. 지금의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석, 할아버지는 이자연이다. 선종에게는 왕비가 세 명 있었는데, 셋 다 이자연의 손녀이다. 또한 시어머니라 할 수 있는 문종의 왕비 세 명은 모두 이자연의 딸로서 사숙태후의 고모들이다. 즉 사숙태후는 인주 이씨의 번성이 한창이던 시절 왕비가 되었다 할 수
인예순덕태후(仁睿順德太后) 이씨(?~1092)는 고려 문종의 제2비이다. 지금의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중서령 이자연, 어머니는 평장사 김인위의 딸이다. 문종의 제3비 인경현비(仁敬賢妃), 제4비 인절현비(仁節賢妃)가 모두 자매이다. 과거에 급제한 평범한 문신인 이자연이 딸을 세 명이나 납비(納妃)할 수 있었던 것은 당대 제일의 세도가라 할 수 있는
선정왕후(宣正王后) 유(劉)씨(생몰년 미상)는 목종의 제1비이다. 친아버지는 종친인 홍덕원군(弘德院君) 왕규(王圭), 양아버지는 성종이다. 어머니 문덕왕후(文德王后)가 처음 홍덕원군과 혼인했고, 뒤에 성종과 재혼하였다. 재혼녀가 왕비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조선시대 영조는 과부와 혼인할 수 없어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와 혼인하지 않았던가! 이는
사택왕후는 백제 30대 왕 무왕(재위 600∼641년)의 왕후이고, 백제 귀족인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다. 사택왕후는 2009년 1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 정비할 때 세상에 나타났다.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미륵사’라는 절의 창건 주체·시기·내력을 증언하는 유물인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가 발굴되었다.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굴되기 전
대목왕후(大穆王后, 생몰년도 미상)는 광종의 제1비로, 태조와 신정왕태후 황보씨의 딸이다. 태조의 딸이니 당연히 성씨가 왕씨여야 하지만 동성혼을 했으므로 어머니의 성을 취해 황보씨라 하였다. 이는 매우 신선하다. 우리는 흔히 전통시대에는 당연히 아버지의 성씨를 따랐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가족법 개정론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간신히 어머니의
만월태후(滿月太后)는 신라 제35대 경덕왕의 후비(後妃)이다. 경수(景垂) 혹은 경목(景穆) 왕후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서불한(舒弗邯) 김의충(義忠)이다. 경덕왕의 왕비는 김순정(金順貞)의 딸 삼모부인(三毛夫人)이었으나 아들이 없어 출궁되고, 743년(경덕왕 2) 4월에 만월부인이 후비로 입궁하였다. 그러나 만월부인 역시 쉽게 아들을 낳지 못했다. 입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