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5남 왕휘지가 풍류인이었다면 7남이었던 막내 왕헌지(王獻之)는 아버지의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서예가였다. 아버지와 그를 묶어 이왕(二王) 또는 희헌(羲獻)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예사에 비중이 크다. 자는 자경(子敬). 동진(東晉) 낭야(琅邪) 임기(臨沂) 사람이다. 생몰연도는 348~388, 344~386이 엇갈린다.
중국 동진(東晋)시대의 왕휘지(王徽之·출생 미상~383년경 사망)는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307~365)의 다섯째 아들이다. 자는 자유(子猷). 관직은 황문시랑(黃門侍郞)에 이르렀고, 아버지에게서 서예를 배워 행서와 초서를 잘 썼다.
절강성(浙江省) 회계산(會稽山)의 북쪽 산음(山陰)에 살던 그는 눈 내리는 밤에 혼자 술을 마시며 좌사(左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