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춰 개관한 송파 책 박물관이 6년 만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평가 인증을 획득했다. 우리나라 책의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역사가 담긴 책 박물관은 지난해 31만 명이 찾으며 대표적인 책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책 박물관은 책과 사람을 이어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단순 전시 공간으로의 존재가 아닌 방문객들이 책
정조 4년(1780) 연암 박지원은 삼종간인 8촌형 박명원의 자제군관으로 청나라 사절단에 동행하였다.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러 가는 사신단의 일원으로 연경(지금의 베이징)을 거쳐 열하(지금의 허베이성 청더)를 다녀온 후 집필한 여행기가 ‘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자는 중미, 호는 연암으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일찍이 문명(文名)을 떨친 문장가로 열하일
☆ 프랑수아드 라 로슈푸코 명언
“사람의 운수는 아무리 다르게 보일지라도 행복과 불행이 서로 뒤섞여서 결국은 평등하게 된다.”
프랑스의 작가. 자주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루이 13세의 왕비가 계획한 반(反)리슐리외 음모에 가담해 투옥되었던 그는 프롱드의 난(亂) 때는 반란군의 지휘를 맡아 전투 중에 목에 중상을 입는 등 파란 많은 반생을 보냈다. 오랜
◇ 조선의 밥상머리 교육/김미라 지음/보아스/1만5000원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지혜보다 지식을, 더불어 사는 법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훈련 받는다. 성공과 부를 삶의 최대 목표로 두고 매진한다.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그 과정에서 물질적 성공만을 강조한
“내 친구 유혜풍(유득공)은 박식하고 시를 잘 지으며 과거의 일도 상세히 알고 있으므로 이미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를 지어 우리나라의 볼 만한 것들을 자세히 밝혀 놓았다. 더 나아가 ‘발해고’를 지어 발해의 인물, 군현, 왕의 계보, 연혁을 자세히 엮어 종합해 놓았으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려가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권영국)은 설립자인 고(故) 매산 김양선 교수가 수집한 홍양후 서찰첩 '고칭연사(古稱燕士)' 두 개의 책을 탈초ㆍ번역해 '고칭연사-중국선비가 홍양후에게 보낸 편지와 시문'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서찰첩은 19세기 초반 청나라 선비들이 삼사(三斯) 홍양후(洪良厚)에게 보낸 편지 37통을 모아
세종에 버금가는 조선의 왕을 들라면 다들 22대 정조(1752.10.28~1800.8.18)를 꼽을 것이다. 군주로서 사명감이 남달랐던 그는 개혁을 통해 진정한 애민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개혁군주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조는 자신이 추구하던 개혁을 완성했을까.
잘 알다시피 그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노론의 무고로
어느 날 공자가 냇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어감은 알 것 같은데 우리말로 옮기기가 참 어렵다. “가는 것은 이와 같아서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라고 말을 이으면 더 어색해 보인다. 논어 자한(子罕)편의 원문은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다.
공자의 탄식을 천상지탄(川上之嘆)이라고 한다. 川上은 냇
섭렵(涉獵)은 물을 건너 찾아다닌다는 뜻이다. 많은 책을 널리 읽거나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박섭(博涉)과 같다. 섭(涉)은 건넌다는 뜻인데, 섭세불심(涉世不深)이라고 하면 세상일에 어둡다는 말이다. 엽(獵)은 사냥하다, 추구하다는 뜻이다.
섭렵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정밀하지 못하면 그런 공부는 수박 겉핥기가 된다. 어린이들
연암 박지원은 “벗은 제2의 나”라고 했다. 담헌 홍대용에게는 “그대와 나눈 대화가 10년 독서보다 낫소”라는 말도 했다. 두보가 이백을 생각하는 시에 춘수모운(春樹暮雲)이라고 한 이후 이 말은 멀리 있는 벗을 그리는 성어가 됐다.
이덕무의 이런 글은 어떤가. “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책 읽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라고 21세 때 스스로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쓴 사람이다. 항상 소매 속에 책과 필묵을 넣고 다녔다. 약관에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와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을 냈고, 규장각 경시대회(競詩大會)에서 여러 번 장원을 했다.
호
식색성야(食色性也), 음식과 여색은 인간 고유의 성이라는 게 고자(告子)의 설이다. 그러면 매일 진수성찬(珍羞盛饌)이면 좋을까? 아니다. 예부터 군자는 조차담반(粗茶淡飯), 좋지 않은 차와 거친 밥에 자족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은 당숙인 동악(東嶽) 이안눌(李安訥·1571∼1637)의 행장(行狀)에 이렇게 썼다.
중국 북송(北宋) 때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옛날 어진 사람들은 지위나 물질적인 것에 기뻐하거나 자기 신세를 슬퍼하지 않았다. 조정의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오로지 백성들의 노고를 우려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오로지 임금의 과실을 걱정한다. 나아가도 근심이요 물러나도 걱정이다.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아침 뉴스쇼를 보는데 구역질이 났다. TV를 끄고 싶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다. 그래도 켜놓는다. 저것들의 사악함에 치가 떨리지만 지켜본다.” 어떤 칼럼니스트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그 기분을 완전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구역질에 대해 찾아 공부하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게 됐다. 고치는 방법까지 연
시대를 앞서간 명사들의 삶과 명작 속에는 주저하지 않고 멈추지 않았던 사유와 실천이 있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번 호에는 퇴계 이황의 유별했던 매화 사랑을 소개한다.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난리법석이다. 자발적 격리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의 매너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복어? 오해투성이다. 누구나 복어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지만 오해가 많다. 복어에 대한 환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