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감원, 한 해 입사자 많아 ‘기수명’ 만들어 단합력 강조 함용일 부원장, 1992년 입사 ‘해오름’ 기수 김정태 부원장보-조사라인 3국장, 1995년 ‘허심탄회’ 기수 1996년 ‘기암괴석’ 이어 1997년 ‘일사천리’가 마지막 기수
금융감독원은 과거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을 통합한 감독기관이다. 말 줄임
금융감독원이 ‘불공정거래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조사 부서 체제 개편을 예고한 가운데 김정태 금감원 금융투자·공시조사 부원장보와 공시조사 3국(기획조사국·자본시장조사국·특별조사국) 국장들이 증권감독원 입사 동기로 구성돼 체재 전환 이후 업무적 시너지가 기대된다.
조사라인 95년 입사 ‘허심탄회’ 기수 뭉쳐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김정태 금감원
얼마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금융감독원(금감원)을 특별감찰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감찰의 목적에 대해서는 DLF 사태 발생에 대한 문책설, 라임자산운용 폰지사기 등 금융소비자의 피해가 계속되자 진상조사를 한 것이라는 설, 금감원 감독부실이나 금융기업에 대한 과도한 징계 때문이라는 설 등등 다양한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런데 특별감찰을 한 목적이 무엇이든
자본시장법에는 간혹 어색한 법률용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시세조종, 사기적 부정거래에 관한 조문에서 ‘누구든지’라는 표현은 사족이다. 아마도 미국 입법례(any person who shall…)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금감원 재직 중 법령에 관한 보고서를 읽다 보면 부적절한 법률용어들이 많았는데 자본시장법의 어색한 표현들은 금감원 직원들의 작품인
1995년 백원구 증권감독원장 당시 구체화 되지 못한 통합 금감원 설립은 후임 박청부 원장 시기에 이뤄졌다. 통합 과정에서 증권감독원은 물론 각 감독기관의 우려와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애초 기관 통합 논의는 1995년 한국은행 독립 논쟁 과정에서 처음 대두했지만 한차례 무산된 후 1997년 2월 다시 추진됐다. 정부는 재정경제원과 은행·증권·보험감독원
고(故) 백원구 전 증권감독원장은 이 기관의 위상 정립과 함께, 조직의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수뢰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임명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백 전 원장은 1994년 5월 재무부 차관에서 물러나자마자 증감원장에 내정됐다. 당시 그의 전임이었던 박종석 전 원장은 “홍재형 재무부 장관으로부터 사전에 양해를 받지
박종석 전 증권감독원장은 증권업보다는 은행업권에 잔뼈가 굵은 인사였다. 자유를 빙자한 방임이 넘쳐나던 증권시장에 은행업권과 같이 체계적인 규율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박 전 원장의 출발에는 기대보단 아쉬움이 먼저 자리했다. 정영의 4대 원장이 취임 한 달여 만에 재무부장관으로 발탁되면서 급하게 그 공백을 메우게 됐기 때문이다. 정 전 원장은
“시장은 시장에서 관리하겠다.”
재무부(현 기획재정부)로부터의 감독 실권 확보라는 이 같은 아젠다는 1977년 증권감독원 설립 초기부터 고민해온 숙제이며 증감원 독립의 역사로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금융감독원 설립 이후에도 수장은 재무부 출신이 독점했지만 당시 증감원 설립 초반에는 ‘재무부 보조기관’으로 불릴 만큼 자체 권한이 유명무실해 감독 실권
고(故) 정춘택 전 증권감독원장은 청사 신축, 외풍 차단과 같이 증감원의 권위를 높이고자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대 고 홍승희 전 원장이 주춧돌을 놓고 2대 고 박봉환 전 원장이 기둥을 세웠다면 정 전 원장은 증감원에 벽을 두른 셈이다.
정 전 원장의 재임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동화통신 외신부 차장, 재무부 외환국장, 조달청 차장, 외환은행
고(故) 박봉환 전 증권감독원 원장은 역대 원장 중 가장 장수한 리더다. 고(故) 홍승희 초대 원장의 뒤를 이어 증권감독원 설립 5년째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7년간 증권시장의 기틀을 잡고자 동분서주했다. 홍 원장이 허허벌판에 감독 전문기구의 토대를 세우고 기업들을 증시로 끌어들였다면 박 원장은 기업들이 건전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증시 생태계를
증권감독원 설립 전 자본시장의 정책과 감독은 당시 재정경제부에서 담당했다. 자연스럽게 초대 홍승희 증권감독원장을 필두로 7명의 증감원장 모두 재무부를 거쳐 간 인물들로 채워졌다.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홍승희 원장과 동화통신 기자로 먼저 일한 정춘택 원장을 제외한 5명이 모두 재무부 출신이다. 홍 원장은 이후 19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정춘택
60년 자본시장 발전에서 기업공개를 선도적으로 이끈 초대 증권감독원장은 지낸 고(故) 홍승희 전 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증권감독원 초대 원장으로 지내면서 새로운 기구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1977년 2월 증권감독원 초대 원장에 오르기 전에는 산업은행, 외환은행, 해외경제연구소, 해외건설협회 등 신설
“주도권을 뺏기면 장래가 어찌 될 지는 두고 봐야겠죠.”
증권감독원 출신인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이같이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증권범죄 조사 업무를 강화하면서 금융위의 집행기구인 금감원의 위상 약화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 지난 10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증감원원우회 송년 모임은 예전과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는 것이 참석
파산설에 휩싸인 벨기에-프랑스계 은행인 덱시아의 증시 거래가 중단됐다.
덱시아 주식이 상장된 증권시장인 NYSE 유로넥스트 당국은 벨기에 증권감독원의요청에 따라 7일(현지시간) 오후 3시55분(한국시간 오후 10시55분)부터 매매 거래를 정지했다고 밝혔다.
이날 증시에서 덱시아 주가는 거래가 중단되기 전까지 17.24% 폭락했다.
증감원은 “룩셈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