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금융인 릴레이 인터뷰]“우는 애 업고 ‘책임자 시험’ 공부…간절함이 날 이끌어”

입력 2015-03-11 10:21 수정 2015-06-1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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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숙희 기업은행 강북본부장…‘하늘에 별따기’ 행원전환 시험 20대1 경쟁률 뚫어

“찻잔에 물이 넘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지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르십니까?”

약관의 나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의 거만함을 지적하는 무명선사의 말로, 오숙희 기업은행 강북본부장은 항상 이 말로 겸손을 되새긴다고 한다.

오 본부장은 지난 1979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은행에 들어왔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풍족하게 자랐다면 잘난 척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애써 에둘러 표현했다.

▲오숙희 IBK기업은행 강북지역본부장이 6일 오후 노원구 동일로 IBK기업은행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소통은 최고 내실은 최강 = 지난해 1월 강북지역을 맡게 된 오숙희 본부장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소통과 직원들의 사기진작이었다. 기업은행에는 지역마다 고유 코드번호가 부여된다. 강북지역은 그중에서도 서울의 출발지역에 속한다. 강북지역은 거의 30번 이내의 코드로 대부분이 상당히 오래된 지역이다.

오 본부장은 “서울의 출발지역이면서 대부분이 생긴 지 40년 이상 된 지점들”이라며 “성장성이 거의 정체되고 낙후된 지역이라 직원들의 사기도 저하된 상태”라고 첫 부임 때를 회고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선택한 카드가 ‘소통’이었다. 오 본부장은 ‘액션리더’라는 독특한 역할을 만들었다. 지점장, 부지점장, 팀장, 팀원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팀원들 중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직원에게 ‘액션리더’라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오 본부장은 “다른 직원들의 시선 때문에 소신있는 의견을 주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래서 완장을 채워 명분을 쥐어졌다”고 말했다. ‘액션리더’는 팀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털어놓고 소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아 활동 중이다.

오 본부장은 “분위기 복돋아 주고, 자신감을 높이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차원이었다”며 “‘소통은 최고 내실은 최강’이라는 방침을 세워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양한 경험을 했던 노조 시절 = 사실 오 본부장은 일반행원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첫 발은 노동조합에서 내디뎠다. 오 본부장은 “본부부서에 일하던 시절 가장 좋아하고 믿고 따랐던 한 선배가 노동조합에 참여하겠다고 해 혼란스러웠다”며 “그때만 해도 노조는 일하기 싫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편견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멘토였던 선배가 조언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다”면서도 “존경하던 선배가 권유하니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노조활동 제의가 왔었다”는 말을 건넸다. 당시 남편은 오 본부장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게 1998년 노동조합에 들어갔다.

외환위기(IMF) 시절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라 시위가 굉장히 많았다. 오 본부장은 “결혼한 여자가 사회생활도 힘든 데 노조까지 참 많이 벅찼다”며 “밤 새워 투쟁하는 부분도 남편이 다 이해해줘 지금도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노조의 경험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해소였다. 오 본부장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뭐든지 열성적인 ‘억척녀’ = 본부에서 PB(자산관리사)로 선발돼 시험을 거쳐 활동할 때 분당 파크뷰지점장의 이동 요청이 들어왔다. 출퇴근 거리 왕복 100km를 매일 같이 오가는 게 안쓰러웠던 남편이 분당 지점 근처에 오피스텔을 잡아줬다. 오 본부장의 의도와는 달리 과포장돼 비교되던 다른 직원들의 불만도 생겼다. 하지만 성과면에서는 만족했다는 오 본부장은 “일단 몸이 편하니까 능률도 오르더라”고 말했다.

오 본부장이 말단 여행원 시절에는 여행원과 행원을 구별했다. 여행원이 행원이 되려면 시험을 봐야 했다. 그 길은 ‘하늘에서 별따기’였다. 200명이 시험을 보면 합격자가 10명 정도도 안 됐다. 광범위한 출제 범위의 상식문제가 최대의 난관이었다. 한자숙어 2만개 중 2문제가 나오는 식이어서 공부 분량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여기에 과학 2문제, 예술 2문제 등 다양한 상식 문제가 나왔다.

오 본부장은 “마음속에 정식 행원이 되고 싶었던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행원이 되고 3년이 지난 후 책임자 시험에 응시할 계기가 생겼다. 전국에 두 명밖에 없던 여성 과장이 오 본부장의 지점으로 온 것이었다. 오 본부장은 “우는 애를 등에 업고 독서실에서 공부했다”며 “우는 소리도 안 들렸다. 퇴근하고 독서실에서 살았다”고 당시 고뇌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간절함의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1988년 이때는 여자들이 공부하는 것을 썩 좋게 보지 않았다. 남자직원들처럼 시간을 내주는 특혜도 없었다. 독서실을 가도 졸립고 피곤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살림을 병행해서 더욱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간절함이 있으면 되더라. ‘나도 뭔가 해야 되겠다’는 절실함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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