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주머니 속 파블로프의 개

입력 2024-08-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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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현 보좌관)
▲ (최병현 보좌관)

20세기 초, 러시아의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프는 조건 반사의 개념을 입증했다. 개에게 음식을 줄 때마다 종을 울렸고, 반복 끝에 개들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종소리와 음식이라는 두 가지 자극이 반복적으로 연결되면서, 결국 종소리라는 중립적인 자극만으로도 침을 흘리도록 조건화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도파민의 역할이다. 도파민은 보상과 관련된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쾌락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개들은 음식을 받을 때마다 도파민이 분비되었고, 이로 인해 음식과 종소리 사이의 연관성이 더 강해졌다.

우리 삶에서도 파블로프의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바로 스마트폰 알림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에 조건화되어, 새로운 메시지나 SNS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기대감을 품고 즉시 반응하게 된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우리는 스마트폰의 알림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으로 인해 반복 행동이 강화된다.

이 행동은 일상에서 우리의 관계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대화 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에 손이 가고, 결국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는 상대방에게 “당신보다 이 알림이 더 중요하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상대방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이로 인해 깊이 있는 인간관계보다는 느슨하고 표면적인 관계를 더 선호하게 되며, 이를 성숙한 관계방식으로 착각하는 경향도 생긴다.

더 큰 문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문화적 유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부모는 자녀도 동일한 습관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스마트폰 중독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정 내에서 대물림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부모의 스마트폰 사용 습관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자녀가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스마트폰 사용을 통해 정서적 공백을 메우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때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도구지만, 동시에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개인을 고립시키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한다.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만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며, 특히 미성년자의 SNS 과의존 문제에 대한 법적 규제와 올바른 사용 교육이 절실하다.

이미 미국 상원은 미성년자를 유해 콘텐츠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유럽연합은 메타와 틱톡의 청소년 중독 문제를 조사 중이다. 국내에서도 ‘미래세대를 위한 SNS 3법(조정훈 의원)’, ‘청소년 필터버블 방지법(김장겸 의원)’, ‘SNS 아동 가입 제한법(윤건영 의원)’ 등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들은 청소년의 SNS 중독 예방, 유해 콘텐츠 차단, 아동의 SNS 가입 제한 등을 목표로 한다.

오늘도 파블로프의 종소리는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우리는 이 소리에 휘둘려 계속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소리를 활용해 진정한 자유를 추구할 것인가?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도 종소리에 매여 살아가는 조건 반사적 삶을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종소리를 활용해 깊은 인간관계와 진정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 이 선택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결정이자 존재론적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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