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컷] 순수하고 맑은 멜로드라마 ‘청설’

입력 2024-11-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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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청설' 스틸컷 (사진 제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영화 '청설' 스틸컷 (사진 제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용준(홍경)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부모님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수영장으로 도시락 배달을 간 용준은 수어로 여동생을 코치하고 있는 여름(노윤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용준은 대학 때 배운 수어를 활용해 여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수영장에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에게 일침을 날리고, 도시락을 챙겨주며, 함께 클럽을 가는 등 용준은 무료했던 윤서의 일상에 소소한 위로와 행복을 전한다.

‘청설’은 서로를 청각장애인으로 착각한 비장애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사실 여름은 코다(CODA : 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였다. 여름은 자신과 달리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여동생 가을(김민주)을 수어로 코치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장면을 용준이 목격한 것. 여름도 자신에게 수어로 말을 걸어오는 용준을 청각장애인으로 오해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재미는 비장애인 남녀가 수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는 데 있다.

용준과 여름의 멜로드라마를 지탱하는 축은 바로 꿈이다. 여름은 수영선수를 꿈꾸는 가을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삶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을의 수강료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국제수화를 배우기 위한 강의를 듣는다. 하지만 가을은 “너의 꿈이 곧 나의 꿈”이라고 말하는 언니가 부담스럽다. 극 중에서 가을이 화재로 매연을 마셔 부진한 기록을 세우자 여름은 좌절한다. 가을은 그런 언니를 보고 더욱 좌절한다.

이 같은 여름의 행동은 영화가 시작하기 이전의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바로 코다의 삶이다. 여름이 왜 이렇게 가족을 위해, 특히 가을을 위해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있을까. 가족 중 유일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름은 그 능력을 대부분 가족을 위해 사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 영화 '청설' 스틸컷 (사진 제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영화 '청설' 스틸컷 (사진 제공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가을이 매연을 마시고 부진한 기록을 세운 게 자신의 탓이라고 여긴 여름은 용준에게 이별을 고한다. 한가롭게 연애를 하고 있을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마음이 답답한 여름은 엄마를 찾아가 “내가 도와주는 게 좋지 않아?”라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동정”이라고 대답한다. 이어 엄마가 여름에게 말한다. 가족이나 가을이 아닌 자신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여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여름이 가족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용준이다. 여름은 용준을 만나고 비로소 가족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자신의 꿈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보아야 비로소 들린다. 그런 점에서 ‘청설’의 영어 제목이 ‘Hear Me’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꿈이든 사랑이든 그것의 실패가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잘 들으려 노력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순수하고 맑은 멜로드라마는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청각장애인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보는 존재다. 코다의 삶을 살고 있는 여름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더 잘 보는 존재인 그들이 팍팍한 현실 때문에 자신의 꿈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더 잘 보는 능력을 타인의 꿈이 아닌 자신의 꿈을 위해 활용하기. 그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기. ‘청설’의 메시지다.

‘청설’은 요즘 유행하는 무해한 서사의 표본 같다. 조금은 천진난만한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사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봉합하는 방식도 간편하고 익숙하다. 주요 인물들은 청각장애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다. 이 같은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 있다. ‘청설’이 바로 그렇다. 어지럽고, 불편하고, 짜증 나는 일들이 연속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 바로 이런 영화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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