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자동차·태양광 업체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인공지능(AI)에 맞서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화하는 위업에 도전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가 ‘뉴럴링크(Neuralink)’ 설립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 스타트업이 지난해 7월 캘리포니아 주에 의학 리서치 업체로 등록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27일(현지시간) 전했다.
뉴럴링크는 인간의 두뇌에 작은 전극을 삽입해 기계와 소통하면서 생각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이른바 ‘뉴럴 레이스(Neural Lace)’ 기술을 추구한다. 이 기술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2006)’에서 식물인간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한 것과 같은 이치다.
소식통에 따르면 머스크는 뉴럴링크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앞으로도 새 스타트업에서 리더십을 뚜렷하게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트업 트랜스크립틱 설립자인 맥스 호닥은 자신도 뉴럴링크에 합류했다며 머스크가 관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호닥은 “아직 뉴럴링크는 태아 상태에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유동적”이라고 덧붙였다.
WSJ는 전기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고 화성을 식민지화한다는 계획도 머스크의 야망을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머스크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데 과연 뉴럴링크에도 적극 관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제기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현재 머스크는 테슬라 최초의 보급형 차종인 ‘모델3’ 양산을 제 때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여기에 인간을 화성으로 이주시킨다는 최종 목표를 위해 위성 인터넷과 로켓 사업을 벌이는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진공 튜브 속에서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열차인 하이퍼루프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스크가 뉴럴링크를 설립한 건 인류가 인공지능(AI)에 종속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WSJ는 뉴럴링크가 설립 초기에는 뇌질환 치료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기계를 따라잡을 수 있게 돕는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머스크는 최첨단을 달리는 IT 기업의 CEO이면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AI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한 콘퍼런스에서 “AI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인류는 크게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인간이 더 높은 수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두뇌 피질 인터페이스’를 제안했다. 지금처럼 인간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로는 AI의 빛처럼 빠른 정보 처리 속도를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뇌를 컴퓨터화해 AI와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의 알파고는 이미 인간 프로 바둑기사들이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 진화했는데 두뇌에 전극을 꽂아 슈퍼컴퓨터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인간이라면 알파고와도 겨룰 수 있는 셈이다.
최근 수주간 뉴럴링크는 뇌과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학자들을 잇따라 채용했다.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소속 엔지니어이자 플렉서블 전극 전문가인 바네사 톨로사, 뇌가 어떻게 운동을 조절하는지를 연구하는 캘리포니아대학의 필립 사브스 교수, 새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연구하고자 핀치새 뇌에 전극을 이식했던 티머시 가드너 보스턴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기업가적인 측면과 미래학자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진 머스크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머스크의 비전이 실현되면 세상은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전기차가 도로를 누비며 4000개 이상의 저궤도 인공위성으로 지구촌 어디에서나 초고속 인터넷을 즐길 수 있으며, 여객 우주선으로 달을 왕복하고 화성에 식민지가 있는 SF 영화처럼 바뀌게 된다. 우주비행사는 아마도 뇌에 전극을 꽂은 인간이 담당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아이디어들이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머스크는 그동안 여러 비관론자들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입증했다. WSJ에 따르면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대중화 아이디어를 비웃었지만 현재는 테슬라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방위산업 전문가들은 우주개발에 초짜였던 머스크가 로켓, 그것도 재활용이 가능한 로켓 발사에 성공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