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실종 사회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12-01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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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됐다. 그들의 열정을 담을 그릇은 더 이상 없었다. 패자부활전을 허락하지 않은 강자독식의 메마른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뉴시스)

11월은 잔인했다. 최소한 한국 야구판에선 그랬다. 누군가는 재기의 발판마저 빼앗겨 눈물을 삼켰고, 다른 누군가는 100억원에 육박하는 몸값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국내 유일의 독립야구단이던 고양 원더스가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해체된 지난달 25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담을 그릇은 없었다. 멍든 가슴을 움켜쥔 선수들은 하나 둘 경기장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멍든 가슴을 다시 한 번 강타 당했다. 프로야구 자유계약(FA)선수 19명과 원 소속구단의 협상 마감일이던 지난달 26일 밤까지 무려 400억원에 육박하는 거래 금액이 쏟아졌다. 고양 원더스 해체와 FA 거품 논란은 불과 이틀 사이 일어난 일이다. 패자부활전 없는 강자독식의 메마른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틀이었다.

▲고양 원더스가 해체된 다음 날, 자유계약(FA)선수 시장엔 무려 400억원이나 되는 돈이 쏟아졌다. 멍든 가슴을 움켜쥐고 그라운드를 떠난 선수들은 다시 한 번 상처를 입게 됐다. (뉴시스)

고양 원더스 야구단은 지난 2011년 9월 창단, 김성근 감독을 영입한 후 그해 12월 국내 최초 독립구단으로 출범했다. 허민 구단주는 꼬박 3년간 아무런 조건 없이 매년 30억원 이상의 투자를 이어가며 23명의 선수를 프로구단에 보냈다. 3년간 남긴 성적은 96승 25무 61패, 돈으론 환산할 수 없는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하지만 고양 원더스 해체로 길바닥에 내려앉은 선수들은 또 다시 부활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겼다. 프로구단들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거나 구단이 방출한 선수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은 고양 원더스가 유일했다. 그래서 더 많은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고양 원더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기존 9구단이 좀 더 포용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던 걸까’라는 섭섭함도 감출 수 없다. 더구나 고양 원더스 해체를 무색하게 하는 수십억원의 FA 선수 계약금을 보면 허탈감이 밀려온다.

▲지난달 25일 고양 원더스 선수단이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3년간 96승 25무 61패라는 성적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뉴시스)

물론 10년 가까운 기간 한 구단에서 꾸준히 출전하며 고른 성적을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내공과 신뢰를 감안하면 FA 선수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단 하루 사이 400억원이 쏟아진 FA 시장과 단 한 푼의 지원도 허락되지 않는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단순히 시장논리로써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영원히 인생의 쓴 맛만을 느껴야 하는 사회가 진정 건전한 세상이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FA시장에 쏟아진 엄청난 금액을 보며 다시 한 번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강자독식 사회가 진정 살맛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을까. 또 그 사회 속에서 미래는 꿈틀대고 있는 걸까.

‘원조 연습생 신화’ 장종훈, 한국 최고의 왼손타자 김현수(두산), 홈런왕 박병호, 그리고 올 시즌 최고의 히어로 서건창(이상 넥센)까지 이들은 모두 연습생이라는 패자부활전을 거쳐 기적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패자부활전이 필요한 이유를 가장 멋 떨어지게 설명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금 패자부활전 실종시대다. 열정으로 가득해야 할 그릇엔 FA 거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 거품 속에서 승자독식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점점 메말라가는 한국사회에선 멍든 가슴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패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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