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칼 아이칸] 한 번 문 사냥감은 놓치지 않는다… 110년 제록스도 쪼갠 ‘강철의 칼’

입력 2016-03-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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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고 아무도 믿지마라” 냉철한 투자철학으로 반세기 동안 年 30% 수익률

합병·분사 극약처방 CEO에겐 ‘저승사자’…주가상승·배당증가 주주에겐 ‘행동주의자’

“친구가 필요하다면, 개를 키워라.”

월가의 탐욕을 그린 영화 ‘월스트리트(1987)’에서 주인공이자 악명높은 금융가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가 남긴 유명한 대사다. 이 대사는‘기업사냥꾼’으로 통하는 주주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80)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회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로 먼저 잘 알려졌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그의 냉철함과 투자 철학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는 워런 버핏과 함께 미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투자의 촉’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돈 냄새’ 맡는 감각은 버핏보다 아이칸이 한 수 위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전문매체 포브스의 지난 2일(현지시간) 집계에 따르면 1968년 이후 아이칸의 투자 수익률은 연간 30%. 1000달러 투자 시 3억83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다. 같은 기간 버핏의 연간 투자 수익률은 19.5%에 그친다. 버핏을 뛰어넘는 투자성과를 자랑하지만, 장기 투자와 가치 투자를 강조하는 버핏에는 ‘투자의 귀재’라는 별명이, 아이칸에는 ‘기업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아이칸 특유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 때문이다.

◇ 철학도에서 의대생…월가로 뛰어들다=아이칸이 날 때부터 투자에 천부적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미국 뉴욕 퀸즈 출생인 아이칸은 유대인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7년 프린스턴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대 의과대학에 들어갔지만 2년 만에 자퇴하고 군에 입대했다. 매일 시체를 대하는 게 끔찍하다는 것이 자퇴 이유였다. 군 제대 후 1961년 돌연 아이칸은 월가로 발걸음을 돌려 주식중개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자본금 40만 달러를 빌려 자신의 이름을 딴 증권회사 ‘아이칸앤드코’를 세워 리스크 차익거래와 옵션거래 등 과감한 베팅으로 월가에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그가 월가에서 ‘스타급’으로 부상한 결정적 계기는 1985년 항공사 트랜스월드에어라인(TWA)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때부터다. 당시 TWA는 극심한 부진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아이칸은 헐값에 TWA를 사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TWA는 아이칸의 적대적 M&A를 막으려고 법과 여론 등에 호소했지만 결국 회사는 아이칸 손에 들어가게 됐다. 논란 끝에 TWA를 손에 넣고 최고경영자(CEO) 직에 올랐지만, 회사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는 1988년 회사 상장을 폐지했고 1992년 파산보호를 신청, 이듬해에는 회사에서 손을 뗐다. 이 회사는 결국 2001년 아메리카에어라인 모기업인 AMR에 매각됐다.

◇ 행동주의 투자자인가, 악랄한 기업사냥꾼인가= 아이칸의 집무실은 위임장 대결, 법적 분쟁 관련 문서와 상패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반세기에 가까운 ‘기업사냥’의 산물이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는 회사가 있다면 싼값에 지분을 매수해 경영에 개입하거나 인수를 시도한 뒤 차익을 챙기는 것이 그의 투자 전략이다. 올해로 80세인 그는 연초부터 잇따라 글로벌 기업 ‘쪼개기’에 성공했다. 지난 1월 28일 복사기 대명사이자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록스가 하드웨어와 서비스 등 2개 부문으로 분사하겠다고 밝혔다. 이틀 전에는 보험회사 AIG가 증권 부문을 매각하고, 모기지 보험 부문을 기업공개(IPO)하기로 결정했다. 모두 분사를 요구한 아이칸의 ‘작품’이었다. 그가 지분을 사들여 경영에 개입하거나 인수를 시도한 글로벌 기업은 RJR내비스코, 타임워너, 모토로라, 개닛, 야후, 펩보이스 등 최소 20곳이 넘는다. 이들 기업 모두 아이칸의 등쌀에 못 이겨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주주 환원을 확대했다. 그는 지난 2006년 KT&G 적대적 M&A 움직임으로 10개월 만에 1500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챙겨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이칸은 기업에 극약 처방을 요구하는 탓에 경영인들 사이에서 ‘저승사자’, ‘기업사냥꾼’으로 불리지만 소액주주는 그의 행보를 환영한다. 그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오르고 배당액이 늘어나기 때문. 아이칸은 자신을 스스로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아이칸이 지분매입, 주주 환원과 합병 요구 등으로 기업 가치를 단기간에 끌어올리지만, 주식 매각으로 차익 실현 후에는 손을 털기 때문에 늘 ‘먹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 애크먼과는 앙숙…트럼프와는 화해?= 아이칸은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CEO와 앙숙관계로 유명하다. 이들의 불화는 2003년 부동산업체 홀우드리얼티 지분 매각에 대한 차익 배분 논란 이후 건강보조식품업체 허벌라이프로 2013년 정점을 찍었다. 2012년 말 애크먼은 허벌라이프가 피라미드 사기 회사라면서 10억 달러가 넘는 주식을 공매도했다. 홀우드리얼티 이후 애크먼을 벼르고 있던 아이칸은 2013년 1월 CNBC 생방송에서 “허벌라이프 경영엔 문제가 없다”며 애크먼과 30분 가까이 공방을 벌였고 이후 회사 주식을 대거 매집했다. 같은 해 허벌라이프의 주가는 두 배 가까이 올라 애크먼의 체면은 구겨지게 됐다. 아이칸은 공화당 대선 유력 주자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아이칸은 2009년 파산한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운영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경영권은 트럼프에 차지가 됐으나 이 회사의 경영권은 지난해 3월 아이칸에 돌아갔다.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는 이러한 악연에도 재무장관에 아이칸을 세우겠다며 거듭 강조해왔다. 당초 트럼프의 러브콜을 거절했던 아이칸은 지난해 8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재무장관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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