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의 소비자 세상] 앙꼬 빠진 ‘미세플라스틱’ 규제···’과잉대응’이 필요할 때

입력 2019-12-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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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11월 말 환경부가 세정·세탁 제품에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 고시를 예고했다. 섬유유연제 속의 미세플라스틱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착한’ 소비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이 든 섬유유연제가 퇴출된다”며 반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환경부의 행정 고시를 꼼꼼히 들여다본 뒤에는 ‘환영’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환경부가 행정 고시에서 규제한다고 밝힌 미세플라스틱은 ‘마이크로 비즈’이지, 섬유유연제에 들어 있는 ‘향기캡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정, 연마, 박리 등의 기능을 지닌 마이크로 비즈는 화장실 변기나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하는 세정용품에 많이 쓰였다. 그런데 이 마이크로 비즈가 수(水) 생태계 오염원으로 지목되면서 이전부터 업계는 마이크로 비즈를 사실상 사용하지 않아왔다. 그래서 현재 마이크로 비즈가 들어 있는 세정·세탁 제품은 소비자가 찾기 힘들다. 실제 제품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물질을 환경부가 사용금지 물질로 지정한 셈이다. 참 이상한 행정 고시다.

정작 사용금지 대상에 포함시켰어야 할 물질은 섬유유연제 속 미세플라스틱, 바로 향기캡슐이다. 향기캡슐은 세탁 후 헹굼 과정에서 향 성분을 감싸는 역할을 한다. 건조된 옷에서 향이 지속되는 것은 바로 향기캡슐 때문이다. 향기캡슐은 유럽연합(EU)에서 미세플라스틱으로 규정한 성분이다. 현재 유예기간으로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규제에 들어간다. 회원국이 많은 데다 국가별 사정이 다른 만큼 유예기간이 몇 년 주어지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이번에 환경부가 이미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마이크로 비즈를 규제하면서 미세플라스틱 규제의 핵심인 향기캡슐은 미뤄두며 내세운 이유도 유럽연합의 유예기간이다.

하지만 향기캡슐은 그 자체로 미세플라스틱이기 때문에 헹굼 과정에서 대부분 하천에 유입돼 생태계를 위협한다. 페트(PET)가 풍화작용을 거쳐 미세플라스틱이 되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또 세탁 후 옷이나 수건에 달라붙은 향기캡슐은 미세먼지 형태로 부지불식간에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다. 향기캡슐이 달라붙은 수건으로 우리 아이들의 눈과 입을 닦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향기캡슐의 대체제가 없고 업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합리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특정 업체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미 시중에는 향기캡슐을 쓰지 않는 여러 종류의 섬유유연제가 판매되고 있다. 대체제가 없다고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허가하는 것은 환경부가 환경 오염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섬유유연제에서 향기캡슐은 필수불가결한 성분이 아닌 만큼, 환경보호와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런 세제는 쓰지 않는 것이 필(必)환경 시대 착한 소비자의 자세가 아닐까?

환경부는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호흡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은 개발 당시 ‘인체에 유해하다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용했다가 15년여가 지난 뒤 사상 최악의 성분 이슈로 불거졌다. “향기캡슐에 대한 환경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환경부의 입장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물론 향기캡슐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 생태계를 교란하고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어패류가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제 몸속으로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을 밝혀내는 것은 시간 문제다.

환경부는 “아직까지 향기캡슐을 규제한 나라가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다른 산업규제들과 비교할 때 향기캡슐 사용 금지는 소비자 선택지가 많기 때문에 그리 강한 규제라고 보기 어렵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과 미래 세대의 안전한 삶을 위해 선제적인 환경행정을 펼칠 때가 되지 않았나?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서울시의 대응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바로 ‘과잉 대응’이다. 당시 메르스 발생 병원에 한 발짝이라도 내디딘 사람들은 모두 격리 조치됐다. 일부 불만도 없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위기 관리에 국민들은 신뢰를 보냈다.

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는 시대에 따라, 입장에 따라 찬반이 엇갈린다. 하지만 생태계를 파괴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에는 ‘과잉규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케미 포비아’를 겪은 바 있다. 소비자 안전을 위해서는 포괄적 규제를 먼저 하고 위험 요소가 해소된 뒤 단계적으로 규제를 풀어도 늦지 않다. 더 이상 생명을 담보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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