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미술이 마술이 되는 그곳

입력 2024-0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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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마음속에도 창이 있다. 창이 없다면 우리는 바깥을 볼 수도 감춰진 의미를 발견할 수도 없다. 빛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 작용이 시각(視覺)이고, 사물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태도가 시각(視角, 보는 각도)이다. 視覺은 눈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물체가 가진 능력이지만, 視角은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視角은 새로움을 찾아낼 수 있는 창의력의 바탕이기도 하다.

시각과 관련된 예술이 미술이다. 현대미술은 개념미술이 대세다. 개념미술은 미니멀리즘 이후 등장한 미술사조로서 작품의 조형적 완성도보다 작가의 발상과 의도를 중시한다. 기존 미술이 선이나 면, 형태나 질감 등의 조형 요소를 이용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면 개념미술은 눈에 보이는 물상의 조형성보다는 함축된 의미에 더 치중한다.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것을 선택하거나, 작품 아이디어만 구상한 뒤 제작은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는 빛과 우주를 주제로 한 개념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이 있다. 하늘을 향해 ‘뻥 뚫린 구멍’,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다. 이게 작품이라고? 그의 작품은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빛과 공간’이다. 이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흘러가는, 별이 반짝이는 등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하늘과 구멍을 통해 들이치는 빛의 파장이 작품이다.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구멍은 마치 로마 판테온 신전의 지붕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자는 텅 빈 공간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하늘을 만난다. 잊고 있었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차분하게 하늘을 바라보면 푸른(혹은 흐린) 하늘과 나 자신이 조우하는 가슴 벅찬 감흥에 빠질 수 있다.

하늘이 마치 액자 속에 들어 있는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풍경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관객의 눈앞에 액자를 들이민, 視角의 변환이다.

물리학 등에도 조예가 깊은 터렐은 어떤 재료나 물감도 사용하지 않고 빛과 공간만으로 작품을 만든다. 특정한 이미지나 재료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빛과 색을 맞닥뜨리게 한다. 스카이스페이스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하늘을 관찰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뚫린 구멍을 통해 내부와 외부가 상호 교호하고 빛의 흐름에 따라 양쪽 공간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저 먼 곳에 있다고 생각되는 하늘을 내밀한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미술, 마침내 마술이 된다.

우리는 매일 빛을 보고 그 빛에 익숙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빛도 당연히 있기에 그 존재를 망각하기 일쑤다. 실제로 우리는 빛에 의해 다양한 감수성을 발휘한다. 가령, 어둑한 기도실 내부로 한 뼘의 빛이 스며들 때 보이지 않는 신의 기운을 느끼고 엄숙함에 빠져들기도 한다. 터렐의 작품은 관객의 심리와 공간구조를 이용하여 관객을 명상으로 유도하고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여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도록 한다. 곧, 예술적인 삶이 아닐까?

과거에는 빛에 의한 현상 표현에 주력했지만 오늘날엔 빛 자체를 재료로 삼고, 빛이 유발하는 감각을 체득한다. 터렐은 현대 미술에서 경쟁적으로 취하는 신기술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시각을 전환시킨 것이다.

매일매일 숨 쉬는 공기와 매일매일 마시는 물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지만, 이들의 실체에 대한 존재 의미도 색다르게 환기시킬 수 있다면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우리가 은하수를, 파란 창공을 본 게 언제였던가? 하늘은 늘 거기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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