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소비가 원활하지 않으면 음식점, 슈퍼, 미장원 등 생활밀착형 자영업이 일차로 어려움을 겪는다. 현재 자영업의 어려움도 소비 부진과 관계가 깊다. 그리고 경제의 일자리 창출능력이 떨어져 ‘고용 없는 성장’의 원인이 된다. GDP 구성항목인 소비, 투자, 수출 중에서 소비의 고용유발 효과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수출과 투자가 좋고 GDP가 꽤 성장한다 해도 소비가 위축되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한국경제가 성장이나 수출 등 외형적 모습은 괜찮은데 국민들이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소비 부족과 관계가 있다.
소비 부진의 원인은 괜찮은 일자리 부족이나 높은 집값과 집세 등 경제적 요인 외에도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고령화와 출생률 저하 등 사회적 문제와도 깊이 얽혀 복잡하다. 그래도 한국에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원인을 정리해 보면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2000년대 이후 소비의 원천인 가계소득이 별로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기업정책 등으로 인해 기업소득은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는 데 비해 가계소득의 증가율은 경제성장률보다 크게 낮다. 여기에다 의료보험료, 교육비 등의 부담은 커져 가계의 실질적 가처분소득은 더 적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소비도 제대로 못하고 저축도 못해 가계 순저축률은 미국보다도 낮은 3% 수준이 된 것이다.
둘째, 높은 집값과 집세가 지속적으로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6~2007년 집값 상승기에는 무주택자나 소형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새로 사거나 늘리는 부담이 소비를 제약했다. 2008년 이후 집값 하향 안정기에는 하우스푸어 문제가 불거진 데다 집세가 크게 올라 세입자들이 소비를 늘리기 어려워졌다.
셋째, 한국사회와 경제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 대부분은 취업 가능성, 직장 근무기간, 노후 대책 등에 대한 자신이 없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지금 현재 돈이 어느 정도 있어도 소비를 어렵게 한다.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가계의 자금잉여가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잘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결혼을 어렵게 하고 출산을 기피하게 한다. 결혼을 못하고 애를 낳지 않으면 사회가 고령화되고 소비는 늘어날 수 없다.
소비를 늘리려면 소비부진의 핵심 원인을 조금씩이라도 완화시켜야 한다. 먼저 기업소득을 임금이나 배당 등을 통해 가계소득으로 돌리려는 정책은 반대 의견이 많더라도 추진해야 한다. 특히 기존 정규직원의 임금인상보다 고용확대 등을 통해 임금소득이 늘어나게 하고, 배당소득도 소액주주에게 혜택이 많이 가도록 하면 소비확대 효과가 클 것이다. 다음은 전·월셋값을 확실히 안정시키는 것이다. 괜찮은 소득을 올리는 30대 가정이 소비의 주축이다. 그러나 이들 중 무주택자는 저축한 돈으로 오른 집세를 충당할 수 없어 빚을 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건전한 소비를 못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쉽지는 않지만 사회의 불확실성을 조금씩이라도 줄여 줘야 한다. 논의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개혁도 합리적 수준에서 빨리 종결해야 하고,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해소시켜야 한다. 교육 개혁을 통한 교육비 부담도 줄여 줘야 한다. 그리고 노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 건물 등 부동산을 주택연금 등과 같이 소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이 돌아야 소비가 늘고 경제가 살아난다. 이러한 것들이 진짜 소비확대 정책이다. 금리인하나 재정확대와 같은 쉬운 정책으로 소비를 늘릴 수 있다면 소비 부족 문제는 벌써 해결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