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진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입력 2014-11-1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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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숙기 한스코칭 대표

동창을 만나면 묻지 말아야 할 3대 에티켓이 있다고 한다. 요즘 무슨 일 하느냐, 애들 학교는 어떻게 되었느냐, 아내는 잘 지내느냐 하고 안부를 묻는 것은 눈치없이 분위기를 망치는 고위험군 주제라고 한다. 중년 이전까지는 기본 학력, 직장의 틀, 사회적 인적 인프라 등으로 동창끼리는 삶의 모습이 웬만하게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중년 이후에는 삶의 스펙트럼에서 개인차가 커진다. 건강, 관계, 가족, 심리상태 등의 측면에서 중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중년의 삶은 아프리카와 북극의 거리만큼이나 온도 차이가 크다.

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대두된 웰에이징의 과제는 100세시대 인생살이에 진검 승부로 등장한다. 모바일, 네트워크기술, 빅데이터 등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를 따라가기도 벅찬 마당에, 한번도 되어본 적 없는 나이로 진입하는 준거없는 모험을 긴 세월 치러야 하는 더 큰 과제를 맞는다. 사회적으로도 대한민국은 윗세대가 경험하지 않았던 전대미답의 생애경로를 거치고 있다. 빼앗긴 유아동기, 늘어난 청년기, 줄어든 활동기, 연장된 노년기라는 생애의 변화를 풀어갈 해법을 사회는 사회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찾아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인생에 중요한 것일수록 배우지 않고 그냥 하는 게 많다. 혼수 준비만으로 가정을 이뤘고, 아이가 태어나면 준비 없이 그냥 부모가 되고, 국어는 배웠지만 대화법은 배우지 않았고, 나이를 먹음으로써 저절로 중년으로 접어들게 됐다. “우리는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수명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고 ‘우리 시대의 역설’은 말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의 인생은 마치 해가 떠오르고 지는 과정과 같은데 인생의 오후를 아침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에 위대했던 것이 밤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실이었던 것이 밤에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년이 되면 나는 과연 잘 살아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등등의 해답없는 근원적 질문 등이 올라오면서 외부에 쏠렸던 심리적 에너지는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외적 성취를 위해 쏟았던 에너지가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생애발달상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중년은 제2의 사춘기라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 시기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떠지면서 인생을 탈바꿈할 결정적 전환기가 된다. 그동안은 삶의 토대가 확고하지 않아서, 뭐가 중요한지 몰라서, 남의 이목이 신경이 쓰여, 내 중심으로 살 배짱이 없어서, 이리 저리 휩쓸려 다녔다면 이제부터야말로 내 인생의 핸들을 잡고 ‘나’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삶을 재디자인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철저히 천착돼야 한다. 내 삶을 가치롭다고 생각하게 할 실현가치는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발휘할 나의 재능은 무엇인지 등 자신의 가치와 강점이 만나는 지점을 아는 것이 그 핵심이다. 과거의 몰입, 열정, 시련, 역경의 사건 등이 어떻게 나라는 독특한 인간을 만들어왔는지 삶의 궤적을 탐색하고 현재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며 내가 원하는 미래를 설계해갈 때 내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끗발에 대한 야망, 떵떵거리고 싶은 오기, 남보다 잘 살고 싶은 비교 경쟁 심리, 이런 것 대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의 기준이 자리잡도록 하라. 아직도 두리번 거리는가? 아직도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가? 아직도 어릴 때 채워지지 않은 심리적 허기를 채워야 하는가? 결핍이 반영된 삶의 목표 대신,사회적 기대가 투영된 성공기준 대신, 내 스스로 세운 자기충족적 기준으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작가 박범신이 말하는 자기 갱신의 욕망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과 양식을 과감하게 바꾸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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