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대두된 웰에이징의 과제는 100세시대 인생살이에 진검 승부로 등장한다. 모바일, 네트워크기술, 빅데이터 등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테크놀로지를 따라가기도 벅찬 마당에, 한번도 되어본 적 없는 나이로 진입하는 준거없는 모험을 긴 세월 치러야 하는 더 큰 과제를 맞는다. 사회적으로도 대한민국은 윗세대가 경험하지 않았던 전대미답의 생애경로를 거치고 있다. 빼앗긴 유아동기, 늘어난 청년기, 줄어든 활동기, 연장된 노년기라는 생애의 변화를 풀어갈 해법을 사회는 사회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찾아야 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인생에 중요한 것일수록 배우지 않고 그냥 하는 게 많다. 혼수 준비만으로 가정을 이뤘고, 아이가 태어나면 준비 없이 그냥 부모가 되고, 국어는 배웠지만 대화법은 배우지 않았고, 나이를 먹음으로써 저절로 중년으로 접어들게 됐다. “우리는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수명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고 ‘우리 시대의 역설’은 말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의 인생은 마치 해가 떠오르고 지는 과정과 같은데 인생의 오후를 아침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에 위대했던 것이 밤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실이었던 것이 밤에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년이 되면 나는 과연 잘 살아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등등의 해답없는 근원적 질문 등이 올라오면서 외부에 쏠렸던 심리적 에너지는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외적 성취를 위해 쏟았던 에너지가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생애발달상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중년은 제2의 사춘기라 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이 시기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떠지면서 인생을 탈바꿈할 결정적 전환기가 된다. 그동안은 삶의 토대가 확고하지 않아서, 뭐가 중요한지 몰라서, 남의 이목이 신경이 쓰여, 내 중심으로 살 배짱이 없어서, 이리 저리 휩쓸려 다녔다면 이제부터야말로 내 인생의 핸들을 잡고 ‘나’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삶을 재디자인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철저히 천착돼야 한다. 내 삶을 가치롭다고 생각하게 할 실현가치는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발휘할 나의 재능은 무엇인지 등 자신의 가치와 강점이 만나는 지점을 아는 것이 그 핵심이다. 과거의 몰입, 열정, 시련, 역경의 사건 등이 어떻게 나라는 독특한 인간을 만들어왔는지 삶의 궤적을 탐색하고 현재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며 내가 원하는 미래를 설계해갈 때 내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끗발에 대한 야망, 떵떵거리고 싶은 오기, 남보다 잘 살고 싶은 비교 경쟁 심리, 이런 것 대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가의 기준이 자리잡도록 하라. 아직도 두리번 거리는가? 아직도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가? 아직도 어릴 때 채워지지 않은 심리적 허기를 채워야 하는가? 결핍이 반영된 삶의 목표 대신,사회적 기대가 투영된 성공기준 대신, 내 스스로 세운 자기충족적 기준으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작가 박범신이 말하는 자기 갱신의 욕망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과 양식을 과감하게 바꾸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