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편지는 붙이나요, 부치나요?

입력 2014-11-2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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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기자

우표 수집광 친구가 있다. 대학 시절 새 우표가 나오면 강의를 빼먹는 건 물론 밤새 우체국 앞에 줄서 있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 친구를 위해 몇몇이 우체국 앞에 자리를 깔고 막걸리를 마신 날도 꽤 된다. 1970~80년대에는 우표 수집이 취미인 사람이 많았다. 이메일, 핸드폰 문자메시지 등에 밀려 손편지가 사라지면서 우표의 생명 유지에 대한 우려가 들리는 요즘에도 그 친구는 여전히 세계 곳곳을 떠돌며 우표를 모으고 있다. 황진이,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마릴린 먼로, 소피아 로렌 등 우표에 등장하는 인물도 참으로 다양하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생전에 조선 사람을 만나 바둑을 두었다는 우표 속 이야기도 재미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편물에서 우표를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우표가 있어야 할 자리엔 바코드 스티커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우편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겠지만 그런 우편물을 받고 나면 허전한 마음이 들곤 한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는 지인의 고뇌, 눈물, 사랑이 스며 있는 편지를 받을 땐 몇 배로 서운하다. 손편지 특유의 운치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표의 존재조차 잊은 이들도 있으리라.

우표는 편지봉투에 붙이는 걸까, 부치는 걸까? 그리고 편지는 붙이는 걸까, 부치는 걸까? ‘부치다’와 ‘붙이다’는 생김새와 발음이 비슷해 쓸 때 헷갈린다. ‘밀다’ ‘쏘다’ ‘벗다’‘걷다’ ‘몰다’ 등 다른 단어와 결합할 경우엔 더더욱 아리송해 바르게 구분해 쓰기 쉽지 않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양쪽을 붙게 하다(접착시키다/밀착시키다)란 뜻일 경우 ‘붙이다’를, 그 외엔 ‘부치다’를 쓰면 된다.

‘붙이다’는 ‘붙다’의 사동사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다” “벽에 메모지를 붙이다” “담뱃불을 붙이다” “구실을 붙이다” “별명을 붙이다” 등과 같이 쓰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두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부치다’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편지나 물건 따위를 상대에게 보내다(편지를 부치다) △모자라거나 미치지 못하다(힘에 부치다) △어떤 일을 거론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 상태에 있게 하다(비밀에 부치다) △어떤 문제를 다른 곳이나 다른 기회로 넘기어 맡기다(표결에 부치다) 외에도 논밭을 부치다, 한글날에 부치는 글, 전을 부치다 등처럼 여러 의미로 활용된다.

다른 단어와 결합해 하나의 낱말이 된 경우 역시 같은 방식으로 구분해 쓰면 된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벗어부치다’를 제외한 나머지엔 ‘붙이다’가 적합하다고 생각해도 된다. ‘밀어붙이다’ ‘쏘아붙이다’ ‘걷어붙이다’ ‘몰아붙이다’ 등은 ‘붙게 하다’란 의미를 안고 있다. 하지만 ‘벗어부치다’는 ‘힘차게 대들 기세로 벗다’란 의미로 밀착, 접착과는 관련이 없다. “화가 난 그는 웃통을 벗어부치고 달려왔다” 등으로 활용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기 전 우체통은 숱한 사람들의 애환과 사연을 품었다 비우기를 반복했다. 설렘을 안고 편지를 보내고 나면 답장을 받기까지 초조하고 때론 아팠기에 편지는 곧 간절함이요, 기다림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단 몇 분이면 대화가 오고가는 광속 디지털 시대에 우체통의 ‘빨간 유혹’이 애틋한 건 비단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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