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공연장으로의 환상 여행-이유리 교수

입력 2014-11-28 11:17 수정 2014-11-3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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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리는 최고의 호사는 몇 년에 한 번이라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를 찾는 전 세계의 공연 관광객들과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오전이면 맨해튼 거리를 걸어 뉴욕 연극발전기금에서 운영하는 당일 공연 티켓 할인 창구인 TKTS(TICKETS)에 줄을 서서 그날 그날 볼 공연을 골라 할인 티켓으로도 로또에 당첨되듯 좋은 좌석의 행운을 기대하며 공연장으로 향하고 공연을 본 후에는 을씨년스러운 뉴욕 밤거리를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오는 일상은 평생 반복해도 그 자체로 행복한 일탈이고 환상여행이다.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그 맛이 더한 건 몇 백년 전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그 공간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과거로의 여행에 흥분되는 공연장들 덕분이기도 하다. 체홉극장, 거쉰극장 등 이름만으로도 황홀한 역사적 공연장에서는 그들의 영혼과 조우하는 듯하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그런 뮤지컬 전용관들이 40개가 넘는 공연장 백화점이다. 그러니 뉴욕 체류기간은 늘 현실과는 결별한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공연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넘어가는 관문이고 관객들이 집단무의식으로 하나가 되는 주술적 공간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공연을 영상으로 대체해 보거나 공연 실황을 음원으로 듣는 경우를 극구 말린다.

몇 년 전, 퍼포먼스 뮤지컬 ‘sleep no more’를 보기 위해 TKTS에서 할인 티켓을 산 후 물어물어 찾아간 삭막한 폐공장지대 첼시 뒷골목은 깜깜했다. 공연 안내판도 조명도 없었다. 전화를 다시 하면 제대로 찾았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그런데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폐허 호텔에 불이 켜지더니 줄 선 관객들에게서 소지품을 다 뺏고 흰 가면을 나눠 주고 절대 벗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바(bar)로 강제 연행하듯 데려가는데 그쯤이면 잘못 온 게 분명하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수밖에 없다. 그때쯤 관객들을 호텔 룸과 룸 사이, 계단, 통로, 연회실로 마구잡이로 끌고 다니며 격렬하고 미학적이고 몽환적인 공연을 펼친다.

어느새 관객들은 스스로 공간 사이를 뛰어다니며 동시다발로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퍼포먼스에 숨 가쁘게 몰두하며 흰 가면을 절대 벗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와 배우들을 구분해 간다. 거기서도 소품을 먹거나 만지거나 침대에서 알몸으로 뒹구는 남녀배우 곁에 앉은 일탈 관객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폐허가 된 낡은 호텔의 공간성을 극대화한 새로운 공연이었다. 그리고 오래전 바로 그 첼시의 폐허가 된 클럽에서 선 채로 칵테일을 마시며 2층 구조 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를 관람했던 ‘동키쇼’도 떠올랐다. 폐허가 된 공간 어디든 공연장이 될 수 있었다.

독일 베를린 겨울은 오후 4시부터 깜깜한 밤이 시작된다. 오후 6시 상점들은 문을 닫고 거리는 몹시 적막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심각한 의혹을 품으며 공연장 문을 연 순간 광채처럼 터져 나오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넋을 잃었다. 그들은 마을 집회라도 열 듯 공연장 안에서 왁자지껄하게 놀았다.

일본 긴자에는 세존그룹이 운영하는 세존극장이 있다. 그 공연장은 관객들을 위한 일탈과 환상의 산실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듯 공간 전체가 보랏빛이다. 그런데 최근에 생긴 중국 상하이의 컬처 스퀘어의 객석과 바닥도 보랏빛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디나 공연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배우들이 나서면 빙 둘러 앉은 관객들은 배우의 뒤태를 보면서도 극에 몰두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권위와 위용의 높은 문턱을 깨고 관객들에게 공연 이상의 체험과 치유와 상상력과 재미와 감동을 충족시키는 자유롭고 발칙하고 새로운 공연장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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