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달려라, 무릎을 긁으면서

입력 2015-02-1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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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피자나 치킨만큼은 안 되지만(이건 순전히 내 생각) 햄버거도 배달시켜 먹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배달근로자들 사이에 맥라이더라는 말이 정착된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맥라이더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음식 배달앱 ‘배달의민족’은 안전교육을 수료한 배달원들에게 수료증과 함께 민트라이더 헬멧을 주고 있다. 이래서 ‘민트라이더’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다. 푸른색과 녹색의 중간쯤인 민트색은 연두색과 비슷하지만 우리말로 딱히 무어라고 말하기 어렵다.

최근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그런 라이더들을 위한 속담 사자성어 풀이를 읽었다. 설상가상이란? 초행길에 기름 떨어져 주유소 찾다가 경부고속도로로 올라가는 것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자주 가는 코너 길이라도 바닥에 엔진오일 깔려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얼른 알아듣기 어려운 속담은 ‘맥라이더 3년이면 무릎을 긁는다’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도 같은 말이다.

그런데 긁는다는 게 다친다는 뜻이 아닌가 보네? 가려워서 무릎을 긁는 건 아닌 것 같고, 카드를 긁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것과는 관계없을 것 같고, IQ 60인 녀석이 등이 가려울 때 벽을 벅벅 긁고는 등을 갖다 대는 건 더욱더 아닌 것 같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행 오프(hang-off)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카운터 스티어링으로 바이크를 눕히고 난 뒤에는 힘을 빼라, 일정하게 스로틀만 감아주면 된다, 상체의 힘만 빼면 바이크는 알아서 돈다, 하체는 단단히 고정해야 된다.”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지만 무릎을 긁는 건 바닥에 거의 무릎을 대고 고속으로 코너를 도는 기술을 말하나 보다. 어떤 바이커는 ‘처음 행 오프를 배웠는데 무릎 대는 게 조금 무섭더니 점점 익숙해져서 간튜닝이 되더군요’라고 썼다. 간튜닝이 뭐냐고? 간 +튜닝, 간(肝)을 배 밖에 나오게 하는 튜닝, 그러니까 겁x가리 없이 달린다는 표현이다.

다른 라이더의 글을 보자. ‘무릎을 긁으려면 힘을 빼고 바이크를 믿고 바이크에 의지해 바이크와 하나가 돼야 한다. 남에게 보이자는 쇼가 아니라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막아서는 나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새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려면 자신이 아는 유일한 세계인 알을 깨야 하는 것처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비슷한 말까지 한 사람은 ‘어제 처음으로 무릎을 긁어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라’고 썼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무릎을 쳤다. 무릎을 치는 건 감탄의 몸짓이며 깨달음의 표현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1007~1072)는 달 밝은 가을밤에 책을 읽다가 무슨 소리인지 들려 아이에게 알아보라고 한다. 아이는 나가 보니 아무것도 없는데 나무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고 했다. 구양수는 무릎을 치며 ‘그게 바로 가을 소리로구나’라고 한다. 빛나는 명문 ‘추성부(秋聲賦)’ 이야기다.

인간은 뭔가 깨달았을 때 왜 무릎을 칠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무릎은 달인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렇구나. 사람은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안 들리던 소리도 듣게 되는구나. 어느 분야든 숙달되면 다 같구나. 나는 또 한 가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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