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대리 인생

입력 2015-08-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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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덕 숭실대 입학관리팀 과장

몇 해 전 방송된 모 통신사 CF에서 남자 주인공은 회사에서는 만년 대리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살아간다. 대리운전 현장에서 그와 우연히 만난 회사 팀장은 “낮에도 대리, 밤에도 대리입니까”라고 운을 떼며, 이제는 두 개의 ‘대리 인생’을 모두 끝내 보자고 격려한다.

이 CF를 보며 ‘내 인생이 저것보다는 낫겠지’ 하며 안도한다든지, ‘그래,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길이 열리겠지’라고 ‘대리 위안’과 ‘대리 실현’의 감정을 느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리 인생’은 특정 직업이나 계층, 경제적인 관점에서 파생되는 전유물이 아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위정자들(빈번하게 뻔뻔하게 국민의 대리자임을 부정하지만)부터, 기업인이나 변호사, 유명 스타도 ‘대리 인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파트단지를 꿀단지 보듯, 자본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이 뚱딴지 같은 사회에서, 단지 ‘내 일’을 위해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여나 ‘내가 대리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지도 않았다면, ‘만년 대리’로서의 편입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담론을 떠나 일상의 소소한 것들도 ‘대리 인생’으로 점철돼 있다. 보여주기식 SNS부터 매스미디어의 연애, 가상결혼, 육아, 요리 프로그램 등은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다. 정제된 화면과 선별된 감정 속에 어떠한 사유나 고민의 부피도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시각화된 이상’에의 종속은 인생의 비대칭화를 가속화한다.

표면적인 ‘대리 인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대리 만족’, ‘대리 체험’, ‘대리 관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잉태한 ‘대리모’로 살 뿐이다. ‘대리 인생’은 자신을 겉돌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남의 틀과 기준에 자신의 인생을 꿰맞출 때 심화한다. 반대해야 한다. 반대로 해야 한다. 내 자신의 주인이 되어 그 틀을 깨야 한다. 남은 남겨 두고, 나를 나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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