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수학] 생명과학의 여섯 번째 혁명이 다가온다

입력 2015-10-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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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겸 아주대 석좌교수

예전에 방사선과라고 불리던 의학 분야가 있었다. 방사선이란 단어가 공포심을 유발한다고 여겨서인지, 요즘은 영상의학과로 부른다. 오래전부터 쓰인 X레이 기법부터 MRI나 컴퓨터 단층촬영 같은 방식을 사용해 보이지 않는 인체 내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인체 내의 모습을 어떻게 찍는 거지? 보이는 것을 찍는 카메라의 원리는 나름 분명하다. 물체에 빛을 보내면 모양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반사될 것이니, 그 반사되는 모습을 기록한 뒤에 원래 모양을 추측하면 된다. 원인과 결과의 인과가 분명해서 대단한 수학도 필요 없다.

자기공명영상(MRI)기법도 비슷하다. 빛 대신에 인체에 강력한 자기장을 보낸다. 그럼 겉을 투과해서 들어간 자기장이 인체 장기의 원자들에 영향을 주어 핵자기공명(NMR)이라는 현상을 일으킨다. 결론적으로 자기장이 휜다. 장기의 모양과 재질에 따라 다르게 휠 테니, 그 휘는 모양을 측정하면 원래 어떤 모양이었을지 추정할 수 있다.

빛이 반사된 모습을 보고 원래 물체의 모습을 추정하는 카메라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장기의 모양과 재질이 자기장을 어떻게 휘게 하는지를 이해해야 원래 모양을 추정할 수 있을 거라서, 일단 훨씬 어렵다.

인과를 따진다면 원래 장기의 모양이 원인이고 자기장이 흰 모양은 결과다. 원인을 안다면 물리학적 분석으로 결과의 예측이 가능해지는데, 문제는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건 결과뿐이라는 것이다. 자기장이 흰 모양으로부터 그 결과를 야기한 원인, 즉 장기의 모양을 추정해야 한다. ‘거꾸로 문제’라서 역문제(逆問題)라고 부르는데,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수학 방정식을 만들고 풀어야 하는 아주 난해한 수학 문제다.

세상에는 결과만 보이고 그 원인은 숨겨져 있는 일들이 많다. 그러니 인류사의 많은 지적 작업은 역문제의 해결 노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영국의 물리학자인 피터 맨스필드(Peter Mansfield)경은 MRI 역문제의 수학적 방식을 규명한 공로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고, 2003년에는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이론적 작업 덕에 실제 MRI 단층촬영장치가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러한 역문제를 수학적으로 더 정교하게 풀려는 노력은 지금도 많은 수학자들이 하고 있는데, 영상의학의 진보는 하드웨어의 진보보다 이런 수학 알고리즘의 진보와 더 유관하다.

경험적이고 귀납적 성격이 강한 생물학은 흔히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 수학과 가장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진다. 고등학교의 이과 학생 중에는 수학에서 해방되려고 생물학과에 진학한다는 경우도 있다.

영상의학이 얼마나 수학에 의존하는가라는 예는 “뭐 그거 피해서 다른 생명과학 분야를 공부하면 되지”라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영국의 수학자이자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이안 스튜어트(Ian Stewart) 교수가 쓴 ‘생명의 수학’은 이런 사람들에게 일대 혼란을 안겨준다. 이제까지 생물학에 다섯 번의 혁명적 사건들이 있었는데, 앞으로 다가올 여섯 번째 혁명은 수학과 생물학의 본격적 만남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책 내용의 골자다.

‘음, 설마 그걸 리가’라는 게 통상의 반응일 것이므로 조금 더 들여다보자. 스튜어트는 생물학에 혁명적 진보를 가져왔던 다섯 가지 사건으로, 현미경의 발명, 분류체계의 확립, 진화론, 유전학, 그리고 DNA 구조론을 든다. 스튜어트는 이 다섯 개의 사건에 수학이 크게 기여했음을 상기시키고는, 뇌와 신경세포의 문제를 포함해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칭구조의 규명에 수학이 어떤 혁혁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동역학이론이나 카오스 이론뿐 아니라, DNA 나선구조를 밝히는 매듭이론까지 등장한다.

수학적 방식은 이제 생명체에 관련된 자료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정보를 수집한 후 그 의미까지 분석해낸다. 구조와 패턴이 있는 모든 것은 수학의 범주에 드는데, 패턴이 없어 보이는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조차 이제는 수학의 대상에 포함된다. 흥미진진한 생물학의 시대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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