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원유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이 됐다고 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에너지는 3년간 전 세계 6만곳의 유전을 분석한 끝에 미국의 원유 ‘가채매장량(recoverable oil)’이 2640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2120억 배럴, 러시아의 2560억 배럴을 웃돈 것으로 추정했다.
가채매장량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추출 가능한 원유 매장량을 뜻하며 에너지산업에서 기업가치나 한 나라의 원유 생산의 장기 건전성을 평가할 때 중요 지표로 쓰인다.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은 2조1000억 배럴로 현재 연간 산유량 300억 배럴의 70배에 달한다고 리스타드는 전했다.
사우디 등 전통적인 산유국들은 자국의 방대한 원유 매장량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미국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수년간 셰일혁명으로 기존 에너지 역학관계가 붕괴해왔지만 미국이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방대한 원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에너지 독립에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FT는 설명했다.
리스타드에너지의 페르 마그너스 니스빈 애널리스트는 “이번 결과가 많은 나라의 미래에 큰 놀라움을 불러 일으킬 잠재력은 낮지만 미국은 그렇다”며 “3년 전만 해도 미국은 러시아와 사우디, 캐나다의 뒤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최근 텍사스와 뉴멕시코에 걸친 퍼미안 분지에서 유전을 발견한 사실도 상기시켰다.
리스타드에너지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잔존 원유 매장량의 절반 이상을 셰일유가 차지하고 있으며 텍사스 주에서만 600억 배럴 이상의 셰일유를 갖고 있다.
영국 석유업체 BP 등 다른 기관의 글로벌 원유 매장량 보고서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사우디와 러시아 캐나다 이라크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등 다른 산유국보다 매장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대해 리스타드에너지는 “이들 기관 보고서는 각국 정부의 공식 집계만을 근거로 하고 있다”며 “문제는 많은 나라가 종종 모호한 기준을 적용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매장량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맬린슨 에너지애스팩츠 애널리스트는 “매장량도 중요하지만 생산 비용과 같은 다른 요인들도 감안해야 한다”며 “미국의 부상이 사우디나 러시아 등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을 퇴색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사우디를 중심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장기적인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유가 하락을 감수하는 정책을 펴왔다. 미국 셰일업계가 배럴당 원유 생산 비용을 40달러 밑으로 이전보다 절반가량 절감했지만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은 그 비용이 10달러 미만이다.
맬린스 애널리스트는 “OPEC이 원하는 최적 지점이 있다”며 “이들은 자국의 사회보장 지출에 필요한 견실한 재정수입을 창출하면서도 유가가 너무 올라 셰일유 등이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