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첫 정상 회담에서 키워드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그동안 줄곧 해오던 노골적인 일본에 대한 비판은 봉인했지만 구체적으로 ‘공정’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양국 정상의 말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돼 향후 논란의 불씨 여지를 남겼다고 일본 언론들은 분석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취임 3주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2박 3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와 1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오찬을 겸한 첫 회담을 하고 북핵과 미사일 위협 등에 대한 대처를 비롯한 미·일 동맹 등 안보 및 통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핵과 재래식 전력을 통한 미국의 확고한 일본 방어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강화, ▲센카쿠열도의 미·일 안전보장조약 제5조 적용대상 확인, ▲미·일 동맹에서 일본의 책무 확대, ▲자유·공정무역을 위한 규칙에 기초한 경제관계 강화, ▲미·일 양자 무역협정 논의 등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의 일정 부분 양보를 끌어낸 반면, 아베 총리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는 센카쿠열도에서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냈다는 평가다.
일단 일본 언론들은 트위터를 통해 공격적인 발언을 퍼붓던 모습과 달리 외교무대에서는 정중한 트럼프의 전략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주요국 중에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 이어 두 번째로 트럼프와 회담한 정상으로, 취임 3주 사이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나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공동 기자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 금융 · 환율 정책과 관련해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불만은 삼가했다. 외교적인 예우도 있지만 재무장관과 상무장관이 아직 정식으로 취임하지 않은 트럼프 정권으로서는 당연한 대응이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본 언론들은 기자 회견에서의 발언이나 그 뒤 나온 양국간 공동 성명도 일단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행간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다고 전했다.
예를 들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관계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하고 싶다. 양국에 보탬이 되는 무역관계를 추구하겠다”고 말하자 아베 총리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확대하는 것은 미일 양쪽에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공정한 형태로 이뤄저야 한다”고 답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트럼프가 말한 ‘공정’과 아베가 말한 ‘공정’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를 의식한 맥락에서 트럼프는 “통화 평가 절하는 불공정하다. 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 독일 등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난한 것을 감안했을 때, 아베 총리가 옆에 없었다면 여기에는 당연히 일본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꼬집었다. 그동안 트럼프는 환율과 무역 적자, 시장 장벽 등에 불만을 토로할 때면 반드시 일본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아베 총리가 구상한 공정의 대상은 무역에 국한된다는 분석이다. “국유 기업에 의한 국가 자본을 배경으로 한 경제 개입은 없어야 한다” “지적 재산에 무임 승차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은 미일이 협력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 트럼프가 결별을 선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구도와 중첩된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무역 · 투자 관계를 강화하는데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을 담은 공동 성명에 아소 다로 부총리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주도로 양자 무역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 채널을 가동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점도 문제삼았다.
이 대화 채널은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통상패권이 중국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 제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아소 부총리와 펜스 부통령이 이끄는 새로운 경제 대화 채널을 가리키는 것인지, 미국이 의도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담 후 양국 정상이 보여준 온도차는 미답의 영역에 들어가는 미일 경제 관계의 어려움을 암시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