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金井蘭)은 신라 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 대 여성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원성왕 8년(792) 음력 7월에 신라는 당에 미녀 김정란을 헌상하였다.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김정란은 몸에서 사람을 매혹하는 향기가 났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한다. 원성왕이 어느 날 황룡사 스님 지해(智海)를 궁궐로 불러 화엄경을 50일 동안 강론하게 하였다. 지해스님은 궁 안에 들어올 때 사미(沙彌) 묘정(妙正)을 데리고 왔다. 묘정은 정식 승려가 되기 위한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위해 수행 중인 어린 남자 승려였다.
묘정이 금광정(金光井)에서 매번 바리때를 씻을 때마다 우물 속에서 자라가 나타나기에 먹다 남은 밥을 주며 장난을 하였다. 어느덧 기약한 50일이 지나고, 궁 밖으로 나갈 무렵 묘정이 자라에게 농담하기를 “너는 내가 그간 베푼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테냐?”라고 하였다. 며칠 후 자라가 조그만 구슬 한 개를 입에서 토해내었는데, 묘정은 이를 받아서 허리띠 끝에 달았다.
이후로 묘정을 보는 이마다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여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원성왕이 묘정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더니, 당으로 가는 사신도 묘정을 사랑하여 그와 함께 가기를 청하였다. 원성왕이 허락하여 묘정이 당으로 가게 되었다. 묘정을 본 당의 황제와 승상 및 좌우 신하들도 모두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뢰하였다고 한다.
이를 이상히 여기는 이가 있었다. 관상을 보는 이가 말하길, “이 사미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한 군데도 길한 상이 없는데 남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으니 이상합니다. 틀림없이 이상한 물건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사람을 시켜 몸을 뒤져보게 하였고, 구슬을 발견하였다.
그러고는 말하길, “짐이 여의주가 4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지난해 잃어버렸다. 이 구슬이 내가 잃은 구슬인 것 같다” 하고는 묘정에게 구슬을 얻은 연유를 물었는데, 여의주를 잃은 때와 시기가 일치하였다고 한다. 이에 황제는 구슬을 빼앗고는 묘정을 신라로 돌려보냈다. 그 뒤로는 묘정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김정란은 신라에서 당으로 바친 미녀이다. 반면 묘정은 남자 승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가 원성왕 대로 일치하고, 신라 사신을 따라 당으로 간 것 역시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사미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는 능력을 지닌 구슬을 받은 장소가 금광정이라는 궁궐 안의 우물이었는데, 김정란의 이름이 뜻하는 의미 역시 우물과 난초의 향기이다. 김정란과 묘정이 동일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이다. 김정란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설화로 전한 것일까. 역사적 사실과 설화의 경계에 김정란이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