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엄마가 뜨개질을 하면 ‘겨울이 왔구나’ 생각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엄마는 장갑, 모자, 목도리는 물론 조끼, 카디건, 무릎을 가리는 롱코트까지 떠서 우리 다섯 남매에게 입혔다. 주말에는 동네 복지관에서 무료로 뜨개질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시절 엄마를 따라 시내 양품점에 가는 즐거움이 컸다. 엄마가 색색의 털실을 고르는 동안 원피스, 구두, 머리핀 등을 구경하는 게 좋아서였다.
올해 여든인 엄마는 여전히 뜨개질을 하신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치매 걸릴 염려가 없어”라며 장갑, 목도리, 모자를 떠서 경로당 등 여기저기에 선물을 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엄마 = 뜨개질 = 선물’ 공식이 늘 머릿속에 있다.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공식이 생겼다. ‘남자 = 뜨개질 = 생명’이다.
요즘 SNS 세상에는 털실로 뜬 장갑을 낀 연예인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손모아장갑’ 캠페인이다. 언어·청각장애인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벙어리장갑’을 ‘손모아장갑’으로 바꿔 부르자는 움직임이다. 손모아장갑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겠다. 몇 년 전 ‘엔젤스헤이븐’이라는 단체가 시민 공모를 통해 내놓은 벙어리장갑의 순화어이다. 알기 쉽고 어감도 좋은데, 널리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벙어리’는 처음부터 비하(卑下)의 뜻이 담긴 말은 아니었다. ‘구멍이 없이 막히다’라는 뜻의 옛말 ‘벙을다’가 벙어리의 어원이다. 옛날에는 말을 못하는 언어·청각장애인은 혀와 성대가 붙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엄지손가락만 따로 있고 나머지 손가락이 붙어 있는 장갑을 ‘벙어리장갑’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버벅거리다’라는 뜻의 옛말 ‘버우다’를 벙어리의 어원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버워리 → 버어리 → 벙어리’로 변화했다는 주장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장애인을 업신여겨서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을 사용하진 않을 것이다. 늘 그렇게 말해 왔으니까, 무의식적으로 쓸 뿐이다. 하지만 한겨울 꽁꽁 언 손을 따뜻하게 녹여 줄지언정 말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서럽게 하는 말이라면 쓰지 않아야 한다.
‘꿀 먹은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장님 코끼리 말하듯’ 등의 속담과 ‘앉은뱅이책상’ ‘절름발이 교육’과 같은 말도 순화할 필요가 있다. 말맛을 더할 수 있을진 몰라도 장애인에게는 상처가 될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뜨개질을 썩 잘하지 못한다. 무늬 만들기가 어려워 멈추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뜨개질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짜다가 잘못되었다 싶으면 언제든지 풀어서 다시 시작하면 돼.” 말도 쓰다가 잘못되었다 싶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 특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라면 가려 쓰는 것이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