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관용의 미래

입력 2018-04-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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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인간의 선(善)함은 진화의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꽃과 같다.” 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하바드 대학 교수이자 실험심리학자인 ‘조슈아 그린’은 그의 저서 “옳고 그름(Moral Tribes)”에서 인간은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고, 그러한 판단의 결과가 오늘날 인류가 진화해 온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즉, 단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과 협력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므로 자연스럽게 상호 협력하는 성향을 발전시켜 왔고, 이런 성향을 가진 부족만이 살아남는 진화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개인의 자유와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떠올리면 일견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수 있으나, 역사의 발자취를 되새겨 보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가 있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제국을 건설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로마제국이나 중국의 당 제국 등에서도 협력의 사례를 찾아볼 수가 있다. 로마제국의 가장 화려했던 5현제 시대에 인종 차별이나 종교적 탄압이 없었던 것은 로마시민이 선민의식이나 자신들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의식에 빠져 있지 않았기에 가능하였다. 이웃나라를 무너뜨리고 아무 대가 없이 이방인들에게 로마 시민의 특권과 영예를 허용하는 관용의 정신이 로마가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뿌리가 되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는 전 세계의 모든 종교가 공존하고, 세계 속의 장안, 장안속의 세계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 역시 당 제국의 관용과 협력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미국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용광로처럼 거의 모든 인종과 문화를 쓸어안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예일대학의 ‘에이미 추아’ 교수는 그의 저서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에서 이러한 관용의 정신이야말로 한 국가가 초강대국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반도에는 역사의 전환이 될 수 있는 시간들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는 마음과 더불어 ‘제발’ 하는 기대를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이제 시작된 평화의 시대를 위한 항해에는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을 것이다. 항해의 조타수들의 어깨는 무겁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어지럽게 난무할 것이다. 배에 타고 있는 우리 모두는 단순한 관객을 넘어서 도착지까지 성공적인 항해를 위한 하나의 운명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모든 갈라진 것은 다시 합해 진다’ 는 역사의 대명제가 우리 시대에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같이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은 나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들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보다 큰마음이다. 누군가를 적으로 삼고 이기고 넘어서야 한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협력하는 마음을 극대화 시킬 수 있을 때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관용의 미래’ 라고 불러본다. 7년 전 연평도에서 시작된 도보 순례의 장정은 조국의 평화통일이라는 염원을 가슴에 품고 걷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크다면 크고 높다고 하면 높은 꿈은 까치발을 하고 높이 올라가려는 욕심 섞인 마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관용의 정신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용의 마음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서 ‘우리’와 ‘그들’의 관계에 까지 연결되어 있다. 우리 안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아마도 필요조건일 것이다. 자신의 삶의 도덕적 가치를 강고하게 가짐과 더불어 이웃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지난 70 여 년간 ‘우리’와 다른 체제로 살아왔던, 그러나 원래는 한 뿌리였던 ‘그들’과 같이하는 관용의 미래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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