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2000억 달러(약 225조 원) 규모 대중국 관세 폭탄이 임박하면서 IT 기업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가 됐다.
시스코와 델컴퓨터,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주니퍼네트웍스 등 미국 주요 IT 기업 4개사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추가 관세에 핵심 제품이 포함되는 것을 막고자 최후의 항의를 제기했다고 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들 업체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보낸 공동 서한에서 “통신장비에 대한 관세 부과는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고 투자를 지연시켜 근로자 일자리 손실과 주주환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읍소했다.
서한은 “USTR가 통신 관련 제품에 10~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면 기업과 근로자, 고객과 미국 소비자는 물론 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이 서한은 트럼프 정부가 부과하려는 2000억 달러 대중국 관세 공청회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날인 이날 보내졌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자정 이후 언제라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추가 관세 발동 시 600억 달러의 보복관세로 맞받아치겠다고 공언한 상태여서 무역 긴장이 급격히 고조될 수밖에 없다.
FT는 특히 이날 시스코 등 IT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에 대해 비판과 우려를 표시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대기업 임원들은 그동안 직접 무역정책에 대해 이견을 나타내는 것은 피하고 산업협회나 로비 단체 등을 활용해왔다.
시스코와 다른 3개사 파트너는 관세 부과 대상에 클라우드 서버와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인프라 핵심 분야의 완제품과 부품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절박한 상태라고 FT는 설명했다. 아마존닷컴과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도 클라우드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어 관세 부과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2000억 달러 관세 품목에는 지난해 수입액이 235억 달러에 달했던 통신장비와 152억 달러의 컴퓨터 부품, 79억 달러의 컴퓨터 완제품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루시 루 PIIE 애널리스트는 “관세 품목의 47%는 중간재”라며 “관세가 부과되면 비용이 늘어나 미국 IT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다. 미국 기업들이 이런 비용 증가를 감내하거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역 전쟁이 격화할 것이라는 불안에 기술주 중심의 미국 증시 나스닥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9% 떨어져 3거래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시스코처럼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제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물론 중국시장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애플과 퀄컴, 인텔 등도 막대한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파이낸셜그룹 수석 투자전략가는 “애플이 미·중 무역 전쟁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며 “설령 미국 기업이 중국 정부의 관세 부과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지에서 보이콧을 당하거나 규제와 기타 이슈로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