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무서운 꿈에 질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몸을 버둥거리다가 어느 순간에 벌떡 깨어나는 현상을 두고 ‘가위 눌렸다’고 한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악몽 중의 악몽이 바로 가위눌림이다. 이런 악몽을 꾸는 것을 왜 ‘가위눌렸다’고 하는 것일까? ‘가위눌리다’의 옛말은 ‘가오눌이다’이다. 이 ‘가오눌이다’는 15세기 문헌에도 나타난다고 하는데 ‘가오’라는 명사와 ‘눌리다’라는 피동사가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오’, 즉 ‘가오’는 본래 무슨 뜻일까? 혹 ‘가위(假威)’가 아닐까?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상상일 뿐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물론 사전에 나오는 단어도 아니다. ‘假’는 ‘거짓 가’라고 훈독하고 ‘威’는 ‘으를 위’라고 훈독하는데, 좋은 의미의 ‘위엄’이라는 뜻도 있지만 ‘으름장을 놓다’, ‘윽박지르다’라는 뜻, 즉 위협을 가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假威는 ‘가짜 위협’이라는 뜻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위협이 아니라,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위협이기 때문에 15세기의 언어 ‘가오’는 곧 ‘假威’이며, 假威에 눌린다는 것은 바로 그런 가짜 위협으로부터 억눌림을 당하여 공포에 떨며 꼼짝달싹 못하고 버둥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상상 속 가설(假說)인 것이다.
진짜 위세를 가진 사람보다도 가짜 위세, 즉 허세를 부리는 사람의 으름장과 윽박지름이 더 무섭고 견디기 힘들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은 실세라곤 전혀 있을 수 없는 한낱 저수지 관리인이지만 그의 어깨에 채워진 완장의 假威로 사람을 짓누르는 행패를 부린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에도 완장을 찬 홍위병의 가위에 눌리면 꼼짝달싹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사람에게 걸리면 그 假威에 눌려 공포 속에서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위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假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