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개 나라는 한국의 쌀 관세화 검증을 미룬 채 자국 이해를 확보하기 위한 요구를 내놓고 있다. 관세율 인하와 나라별 쿼터 설정, 밥쌀 개방 확대 등이 그것이다. 쌀 관세화는 이들 나라를 비롯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인증이 이의 없이 마무리돼야 완료된다.
한국 정부는 관세를 제외한 쌀 시장 보호 수단을 철폐하기로 한 WTO 농업협정에 따라 2014년 9월 30일 쌀 관세화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2015년부터 의무수입물량(TRQ) 40만8700톤을 넘어서는 쌀 물량은 513%의 관세를 매겨 들어오고 있다. 다만 관세화 이전 한국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오던 TRQ에는 5%에 저율 관세가 부과된다.
2014년 이전까지는 한국은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TRQ를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러나 TRQ 증 국내 쌀 농가를 위협할 정도가 되자 정부는 관세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관세화 직후 미국 등 5개 나라가 한국에 이의를 제기했다. 관세화가 마냥 늘어지면 이들 나라가 한국을 WTO 분쟁해결기구(DSBㆍ패널)에 제소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걱정거리다. 한국보다 앞서 쌀을 관세화한 일본과 대만은 검증에 각각 1년 7개월, 4년 5개월이 걸렸다. 정부는 국내 쌀 시장을 보호하는 최대 장벽인 관세율은 유지하면서도 의무수입물량(TRQ) 등 세부 사항을 조정해 통상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에 가장 아픈 시나리오는 관세율 인하다. 513%의 관세가 수입 쌀의 한국 시장 잠식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쌀 수출국들은 이 관세가 너무 높다고 지적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관세를 매기지 않은 수입 쌀 한 가마니(80㎏) 수입 단가는 약 12만4875원이다. 지난해 국내산 수확기 쌀값(19만3750원)의 3분의 2 가격이다. 하지만 513% 관세를 붙이면 수입 쌀 가격은 76만5490원으로 뛰어 가격 경쟁력을 잃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급적이면 관세율 513%를 지키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쌀 수출국들의 또 다른 요구는 밥쌀 시장 개방 확대다. 지난해 기준 TRQ 물량 가운데 10%가량인 4만 톤만이 밥쌀용으로 수입됐다. 농가 민감성 등을 고려해서다. 이마저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일부만이 시장에 풀린다. 관세화 이전에는 TRQ 물량 중 30%를 밥쌀로 수입하게 했지만 관세화 이후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어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협상 상대국들은 (밥쌀 수입량은) 당연히 올려달라고 한다"고 밝혔다.
나라별 TRQ 쿼터 설정은 쌀 수출국 내부의 문제가 더 크다. 그간에는 쌀 종류(단립·중립·장립)별로 TRQ 입찰량을 정해 쌀 수출국의 기존 시장 점유율을 어느 정도 보장해줬지만 최근엔 이 시장에 변동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예 나라별 쿼터를 정해 시장 변동성을 없애달라는 게 이들 나라의 요구다. 전문가들은 동남아시아 쌀 수출국 판도가 바뀌면서 기존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5년을 끌었기 때문에 불확실성 제거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한번 해결했으면 하는 상황이다"면서도 "(검증이) '올해 끝날 것이다, 아니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