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수·합병(M&A)을 저해하는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은 ‘정서’인 것 같다. 창업자들은 ‘자식같은 회사를 판다’는 비난 여론을 두려워한다. 유명 회사가 해외에 매각될 때마다 국부 유출 이야기, 일부만 투자 수익을 거뒀다는 지적이나온다. 대기업이 스타트업 인수에 나서면 기술 탈취 의혹을 받기도 쉽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 국회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 M&A 활성화 정책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23일 열린 이 토론회는 중소기업연구원이 주관하고,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했다. 현장에는 임정욱 센터장을 포함해 나수미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강혜미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 강영재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 대표, 강형구 한양대학교 교수,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나수미 연구위원은 ‘M&A를 통한 벤처투자생태계 활성화 방안 연구’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나 연구위원은 성공적 M&A의 조건을 △적정 가치의 인정 △공정한 거래 과정 △기업 간 상호 이익의 부합으로 제시했다.
그는 600억 원의 가치로 카카오에 팔린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김기사’를 예로 들며 적정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털 요즈마 그룹이 국내 스타트업 기술평가를 수행했는데 김기사가 구글에 1조원에 넘어간 같은 서비스 업체 ‘웨이즈’보다 기술적으로 우수함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 연구위원은 “국내 M&A 시장이 바이어 마켓(인수하려는 대기업에 비해 매각을 원하는 스타트업이 많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스타트업 가치의 저평가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강혜미 법무법인 세움(스타트업 전문 로펌) 변호사는 ‘스타트업 M&A의 사례’라는 주제로 국내 주요 사례들을 소개하며,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최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글로벌 배달앱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된 사례를 들었다.
그는 “4조7500억 원이라는 금액은 현대건설, GS 등 대기업 시가총액과 비슷하고, 아시아나항공 2개를 살 수 있는 규모”라며 “동시에 단순히 지분 인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아한형제들과 DH가 지분 50대 50으로 합작회사 우아DH아시아를 싱가포르에 설립하는 등 미래를 향한 거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우아한형제들의 엑시트(투자 회수) 방법은 △IPO(기업공개) △국내 대기업에 매각 △해외 대기업에 매각 등 3개로 나뉜다.
그는 “IPO를 하기에는 경영진이 가진 지분이 13%로 낮았고, 국내 대기업에 팔지 못한 것은 5조 원이라는 금액을 제시할 기업과 금융 자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 변호사는 국내 M&A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배경으로 △신사업에 대한 규제 △스타트업 인수에 소극적인 대기업 △스타트업 가치 저평가를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 완화 △대기업의 인식 변화와 제도적 뒷받침(벤처기업 요건 완화 등) △국내 투자사의 적극적인 투자를 방책을 제시했다.
발제 뒤 이어진 토론에서 전문가들은 국내 스타트업 M&A 활성화를 위한 제언을 제시했다. 강영재 코이스라시드파트너스 대표는 별세한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서는 새 법이나 규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공정거래법을 제대로 집행하면 된다”고 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M&A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선이 중소벤처기업 M&A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대기업이 서로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모험을 하지 풍토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임 센터장은 “외국 VC들은 ‘한국은 블랙박스 같다’고 말하곤 한다”며 “그만큼 한국의 벤처 생태계가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아한형제들의 DH 매각처럼 이런 사례를 통해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면 더 많은 스타트업 M&A가 나올 것”이라며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국부유출이라고 거부감을 보이는 여론을 이해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