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슈퍼히어로, 어쩌다 소시민이 됐을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3-12-31 10:32 수정 2013-12-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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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가 드라마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요즘 방영 중인 ‘별에서 온 그대’는 단 4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다. 외계에서 온 꽃미남이라는 존재와 연예계 톱스타의 시공을 초월한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이색적인 스토리에 아무래도 김수현과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힘이 작용한 덕일 게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외계에서 온 꽃미남 도민준(김수현)이 가진 능력이다. 그는 시간을 순간적으로 멈출 수 있고 무언가를 파괴시킬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게다가 불사의 존재로 이미 4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 긴 세월 동안 쌓인 지식과 경험 또한 초능력 못지않은 능력으로 작용한다.

도민준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엄청난 능력을 숨기고 있는 초능력자이면서 그 힘을 온전히 한 여인을 위해 사용하는 순정남이기 때문이다. 도민준은 400년에 걸쳐 환생한 운명의 연인 천송이(전지현)가 수차례 죽음의 위기에 몰릴 때마다 뛰어들어 그녀를 구한다. 또 그는 현재 톱스타로 살아가는 그녀가 겪는 고충들, 이를테면 루머로 인해 욕을 먹고 심지어 누군가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음해까지 받게 되는 상황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2013년 주목받은 SBS 드라마 중 대부분이 이러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세우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즉 ‘주군의 태양’에서 태공실(공효진)은 아무도 못 보는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또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박수하(이종석)는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물론 이 세 작품 모두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능력은 어떤 식으로든 멜로로 이어지게 된다. 능력을 가진 이들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한다.

흔히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은 엄청난 사람들을 또는 지구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물의 단골 등장인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위 세 작품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어딘지 슈퍼히어로라 부르기 애매모호한 인물들이다.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들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법정극이 일정 장르로 자리하고 있어 거기서 수하의 타인의 속내를 읽는 능력이 활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궁극적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 능력이 결국은 그가 좋아하는 장혜성(이보영) 변호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마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적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겠지만 슈퍼히어로의 능력자가 지극히 소시민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더 이상 거창한 영웅상을 기대하지 않는 대중 정서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편적으로 슈퍼히어로의 능력이 거꾸로 말해주는 대중의 갈증 또한 그 안에는 존재한다. 즉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능력이란, 거짓과 소통부재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갈증의 표현이고, ‘별에서 온 그대’의 시간을 멈추는 능력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극히 얇아진 위험천만한 사회가 갖게 마련인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이나 갈증이 사회적 차원으로 나가지 못하고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은 위축된 대중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회적 변혁이라는 것이 너무나 요원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슈퍼히어로물에서조차 그 능력을 갖고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가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 세계로 귀환한다. 한 개인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운명적 사랑에 충실한 슈퍼히어로는 그래서 굉장한 판타지를 제공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건강한 존재일 수는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존재들은 어쩌다 그 힘을 사회가 아닌 사적인 부분에만 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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