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 둘리’ ‘떠돌이 까치’ ‘달려라 하니’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 ‘머털도사’….
어린 시절 우리를 TV 앞으로 인도한 국산 애니메이션들은 지금 추억의 한 자락을 장식하고 있다.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대표적 애니메이션 하청 기지로 머물렀던 한국은 지금 ‘뽀롱뽀롱 뽀로로’(이하 뽀로로)와 같은 3D 애니메이션을 무기로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파란만장한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떤 길을 지나왔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최초의 국산 TV 애니메이션은 1987년 KBS를 통해 방영된 이현세 원작의 ‘떠돌이 까치’다. 당시 정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위상을 재고한다는 명목 아래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에 돌입했다. 이어 ‘아기공룡 둘리’(KBS), ‘달려라 호돌이’(MBC) 등이 제작되면서 한때 쇠락의 길을 걸었던 국산 애니메이션은 브라운관에서 꽃피우게 됐다.
1988년 방영된 ‘달려라 하니’는 국내 최초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이었다. ‘달려라 하니’의 성공으로 KBS의 ‘천방지축 하니’ ‘2020 우주의 원더키디’ ‘옛날옛적에’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 등의 시리즈 애니메이션이 줄지어 탄생했다. 이에 MBC는 ‘머털도사’ ‘흙꼭두장군’ ‘도단이’ 등 90여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방영했다.
이후에도 1990년대까지 ‘마법사의 아들 코리’ ‘꼬비꼬비’ ‘두치와 뿌꾸’ ‘녹색전차 해모수’ ‘스피드왕 번개’ ‘레스톨 특수 구조대’ 등 다양한 국산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제작됐다. 이 중 여러 작품이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각종 캐릭터 상품, 소설책 등으로 출판돼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러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은 수지타산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에 업계는 3D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2003년 탄생한 ‘뽀로로’가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면서 본격적 3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렸다. 전 세계 130개국에 수출된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8000억원(서울산업통상진흥원 기준)으로 추정된다.
‘뽀로로’의 성공은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유아 타깃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레트로봇과 완구회사 영실업이 제작한 3D 로봇 애니메이션 ‘변신자동차 또봇’(이하 또봇) 완구의 판매량은 레고를 눌렀다. 2011년 EBS에서 첫 방송된 ‘로보카 폴리’는 전 세계 54개국에 팔려나갔다. 투니버스 콘텐츠제작팀 석종서 팀장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뽀로로’ 전후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진단하며 “상대적으로 제작비 회수 확률이 높은 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에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국산 TV 애니메이션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상황은 열악하다. 레트로봇의 이달 대표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제작팀을 회사 내에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작에 대한 경험과 팀워크를 쌓기 어려운 구조”라며 “애니메이션 산업 지원 정책은 현장 스태프의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고용 유지를 지원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석 팀장은 “기획인력 양성·제작비·마케팅·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