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정보를 악의적으로 유포해 신상털기에 이용하는 사례들이 증가하면서, 법을 통해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지방자치단체와 국회 등에서 잊힐 권리 법제화 움직임을 적극 보이고 있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현재 잊힐 권리 법제화를 위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강원도다. 전국에서 잊힐 권리 법제회를 가장 먼저 추진했다. 강원도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과 함께 법제화 관련 국회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관련 법 초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시민단체, 대학교수 등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 지난달 17일 토론회를 개최했고, 지난 2일에는 국내외 법학 전문가들의 학술대회를 강원도에서 열었다.
강원도는 새로운 법률안 마련이 여의치 않으면, 기존 개인정보 관련 법에 조항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잊힐 권리 법제화는 지난해부터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지만, 결국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잊힐 권리 법제화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간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에 방통위는 올 초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자신이 게시한 글에 대한 접근 배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가 주된 내용으로, 대상을 자기 게시물로만 한정했다. 방통위 측은 우선 가이드라인을 운영하다가 실효성을 지켜본 뒤, 20대 국회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잊힐 권리 조항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법제화를 원하는 이들은 자의로 인한 정보는 물론, 타인에 의해 생성된 정보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림대 연승호 교수는 관련 토론회에서 “자의에 의해 생성된 자료의 경우 삭제 권한을 개인에게 주고, 타인에 의해 생성된 자료 중에선 왜곡된 언론 정보와 같이 선별적으로 삭제할 필요가 있다”며 “누가, 언제, 어떻게 정보를 소멸하게 할 것인지 조사·분석해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같이 지자체와 국회, 정부 등에서 잊힐 권리 법제화 움직임이 가파르게 진행되자,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늘고 있다. 공인에 대한 범죄행위 보도, 성범죄자 보도 등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국민으로서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 법제화 반대의 대표적인 이유다.
반대 논리가 극명한 만큼, 법제화 추진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한 관계자는 “무작정 잊힐 권리를 법제화하게 되면 자율·개방성이 기본인 인터넷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며 “미국과 유럽처럼 대륙별 대응도 각기 다른 만큼, 시간을 갖고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