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소프트웨어·스타트업을 포함하는 IT업계와 바이오업계에서는 주 52시간 도입 적용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제조업과 달리 업무량이 유동적인 IT나 바이오업계는 부족한 인력을 늘릴 수 있는 대책도 없이 제도를 도입하고 보자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반발하면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어 한숨만 짓고 있다.
IT업계에서는 정부에 탄력적 근로시간 확대를 요구했지만 지원 대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IT서비스산업협회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1년 △선택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최소 6개월~최대 1년 확대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도 탄력적 근로시간제 관련 단위기간 연장 등을 요청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업계는 혁신적 기술 개발과 발빠른 글로벌 시장 선점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해 나가려면 탄력근무제를 확대하고 연장근로가 근로시간 단축 예외조항에 포함되도록 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IT업계는 상시 업무가 진행되기보다는 특정 시기에 맞춰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게임업계의 경우 출시 일정이 정해지면 그 일정에 맞춰 개발을 진행하는 식이며 시스템통합(SI)업계의 경우 급작스러운 시스템이나 네트워크 장애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를 복구하는 데도 시간 제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은 많은 인력을 활용해 탄력근무제를 시행할 수 있지만 중소형 게임업체나 스타트업의 경우 인력을 추가로 채용할 여력도 없을 뿐더러 새로운 인력이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중소 게임업체에서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한 개발자는 “한정된 인력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라며 “정해진 개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력이 늘어나도 분업이 불가능한 업무에는 제도 도입 자체가 소용없다고 지적했다. 정해진 인력이 맡은 분야마다 개발을 진행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된다면 신작 출시도 늦어져 최악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 출시 직전에는 팀원 전체가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팀원 전체가 근로 시간이 줄어버리면 신작 공개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며 “재택 근무를 하는 등 어떻게든 편법을 쓰는 곳도 생길 것이기 때문에 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바이오업계도 마찬가지다. 신약이나 의료기기 등을 연구개발(R&D)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근로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개발 속도가 늦어져 글로벌 허가 일정에 맞추거나 시장을 선점하기 힘들어진다는 주장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신약 연구 개발직의 경우 개발 일정을 맞추려면 근로자가 야근을 하거나 밤을 새기도 하는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면 개발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면서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바이오벤처의 경우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