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AGI가 곧 나온다”는 장담의 시대

입력 2024-04-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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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선무당’ 예측은 경계해야 하지만
AI기술력이 국력 가를 것은 분명해
투자·법제 총점검 변곡점 대비해야

과학소설(SF) ‘삼체’를 읽은 소감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작품 스케일이 워낙 커서 백악관의 일상사가 사소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좀 과한 찬사라는 생각도 들지만,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다뤄진 ‘삼체’ 스케일이 큰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삼체 문명의 침공 함대가 400년 후에 도착한다는 기본 설정만 봐도 그렇다.

과학계 예언자들이 선호하는 시간 간격은 다르다. 400년이 아니라 20년 안팎이다. 인공지능(AI)의 획을 그은 1956년 미 다트머스대학 학술회의가 좋은 예다. AI가 처음 공식 언급된 그 회의의 과학자들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20년 안에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후 ‘언제 등장할지’를 다룬 보고서 95건의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예외없이 “15~25년 사이”로 수렴됐다. 미국 로봇공학자 로드니 브룩스의 조사 결과가 그렇다. 세계 학술지에 AI논문을 게재한 과학자 2778명을 대상으로 ‘초인적 AI가 언제 나올지’를 물어 올해 초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하다. 예측의 평균값은 2047년으로 나왔다. 앞으로 23년 후다.

그런데, 왜 20년 안팎일까. 영국 옥스퍼드대의 미래학자 닉 보스트롬이 내놓은 걸출한 해석이 있다. 보스트롬에 따르면 20년 후보다 먼 시점에 관한 예측은 사람들의 관심이 확 떨어진다는 결정적 결함이 있다. 반면, 20년보다 가까운 미래에 관한 예측은 위험성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7년 후 택시가 하늘을 날아다닐 것이라고 큰소리쳐서 이목을 끌었는데 여전히 땅바닥만 기면 어떡하나. 그래서 20년이다. 적어도 그 기간엔 평판과 경력이 유지된다. 20년 후의 대중은 오류에 관대할 수도 있다.일종의 덤이다.

예언·예측의 기본 문법이 이런 만큼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범용 인공지능(AGI)’이 곧 등장한다는 호언장담이 최근 속출하는 현상에 눈길이 안 갈 수가 없다. 시간 간격은 멀어도 5~6년이고, 가깝게는 내년이다. 호랑이 간을 삶아먹었는지, 여간 대담하지 않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인터뷰를 통해 “가장 똑똑한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로 AGI를 정의한다면 아마도 내년 혹은 2026년에 개발될 것”이라고 했다. “AI만큼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도,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도 유사한 관점이다. “5년 내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한마음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이점이 온다’를 쓴 레이 커즈와일이 최근 참석한 국제회의에선 과학자 150명 중 약 20%가 초인적 AGI가 나올 일은 아예 없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그런 AGI가 나온다 해도 100년 이후일 것이란 회의적 답변도 수두룩했다. 극단값을 택한 머스크 등이 자본 확충을 중시하는 사업가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이다. 무책임한 예측에 부화뇌동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어제 1.45% 급등 마감한 코스피에서 AI·반도체 등 첨단기술 종목은 대체로 죽을 쒔다. 지난주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가 10% 넘게 급락한 것과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부터 각각 1.93%, 0.98% 하락을 면치 못했다. 선무당 경계론을 뒷받침하는 ‘사소한 일상사’일 것이다.

하지만 대세는 대세다. AI 기술력이 앞으로 국력을 가를 개연성이 많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동일한 물 분자가 물리적 배열이 달라지면 액체가 될 수도 있고, 기체나 고체가 될 수도 있다. 상전이(相轉移)다. AI 분야에서 언제라도 상전이의 순간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적 대응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는 최근 ‘AI 반도체 이니셔티브’ 청사진을 내놓았다. AI 투자를 통해 미국, 중국과 더불어 G3(주요 3개국)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이다. 2027년까지 9조4000억 원을 투자한다고도 했다. 제법 의욕적이지만 이 정도로 족한지 총점검할 필요가 있다. 법제 정비 등 다른 차원의 과제도 수두룩하다. 이 또한 총점검이 필요하다.

SF ‘삼체’에서 삼체 문명은 인류에게 “너희는 벌레다”라는 충격적 메시지를 보낸다. SF만의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 역사적 승부를 가르는 산업혁명과 같은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부터 크게 떠야 한다. 먼 훗날 후손들이 험한 꼴을 면하려면 적어도 20년 후는 내다보고 행동해야 하지 않겠나.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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