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영의 서울 숨은그림 찾기] 옛 삶의 정취 그윽히 남아 있는…'수연산방'

입력 2014-04-1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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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삶의 정취가 그윽하게 남아 있는 성북동에 위치한 수연산방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한 성북동은 기존의 서울 도심 산동네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가파른 언덕위에 한 것 모양을 낸 저택들이 자리한 반면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조그만 서민들의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어 다양한 우리의 주택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그리고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도심에서도 옛 삶의 정취가 그윽하게 남아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지난 5일 햇살이 눈부신 봄날. ‘늙음’이 곱게 스민 성북동의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를 헤집고 걷다 보면 성북동 동사무서 옆 문인이 모이는 산속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을 찾을 수 있다. 수연산방은 수필집 '무서록'과 '문장강화'로 문학 소년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상허(尙虛) 이태준 작가의 오랜 고택 이다. 그는 1933년부터 1946년까지 머물으며 이곳에서 '황진이', '달밤'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그의 외종손녀가 당호를 사용해 찻집을 운영중인 본체

현재는 그의 외종손녀가 당호를 사용해 찻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시 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 주택이기도 하다. 작가의 유년 시절은 알려진 대로 혁명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하고 떠나버린 아버지로 인해 불우했다. 어머니와 서울에 정착했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고학으로 겨우 휘문보고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갔으나 자퇴하고 돌아온다. 서울에서 그는 소설가로 등단하였고, 그 후 수연산방에서 단란한 일가를 이루고 많은 작품을 집필하게 된다. 그의 지난했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이다.

▲상허(尙虛) 이태준 작가의 표지석

수연산방의 현판을 내건 대문을 들어서면 작가를 소개하는 검은 표지석과 아담하고 아름답게 정리된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ㄱ’자 구조의 고택 한 채가 단아하게 들어 앉았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이 건넌방, 오른쪽이 안방 겸 사랑채다로 이루어 졌다. 신발을 벗어두고 대청마루에 앉아 찬찬히 둘러보면 곳곳에 옛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서까래가 훤히 드러난 지붕, 한지 바른 벽, 노리개 몇 점, 깨진 바가지, 옛 재봉틀등 그의 손때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듯하다.

▲옛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대청마루

▲고택 안에 원앙이 사랑스럽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어울어지는 원두막과 두 채의 별관이 있다. 새 로 지어져 옛 맛은 덜 하지만 별관은 나름 멋스럽다. 별관 중 한 채는 전시관식 카페로, 다른 한 채는 ‘북 카페’란 이름을 달고 단체 손님만 받는다.

▲아름다운 정원과 어울어지는 원두막과 두 채의 별관

▲소품들이 전시된 별채

▲별채에서 바라본 북카페와 정원

수연산방은 4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저 마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작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활짝 핀 벚꽃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봄은 그 중 백미이다.

▲정원 한구석에 꽃들이 봄의 시작을 노래하듯 소박하게 피어 있다.

이런 소박하고 아름다운 고택을 우리에게 선물한 그의 말년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소설가 홍명희와 함께 월북한 그는 남로당계의 숙청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무서록’에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오래 살고 싶다던 그의 소망이 생각난다. 그리고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봄을 수연산방에서 그와 함께 맞이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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