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기업을 압박하던 정부가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
3개월여 동안 활동한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는 오히려 석유가격 비대칭성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석유가격 결정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사실상 발견하지 못했다.
석유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보니 반시장경제적인 ‘기업압박’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류세 인하는커녕 정유업계에 사회공헌 강화라는 추가부담마저 지웠다.
정부는 6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실시한 ‘석유가격 TF 활동결과’ 발표에서 “석유가격의 비대칭성은 있고 그에 따라 어느 정도 정유사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것을 담합이라는 결과로 가지고 갈 어떤 결정적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비대칭성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행태변화로 복잡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른 나라의 경우도 대부분 제품의 가격변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이런 비대칭성은 대부분 흔히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그 동안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해 온 석유가격 비대칭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말을 180도 바꾼 것. 정부는 비대칭성의 원인에 대해서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행태변화가 주된 원인이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석유가격 결정 방식 역시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정부는 “근본적으로 국내 석유제품시장 개설을 통해 국내 수급요인을 반영하는 국내가격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애매한 대책을 내놓고 은근슬쩍 넘어갔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격방식을 문제 삼으며 지적했던 ‘국제제품가 방식이 국내 수급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제품 가격을 결정할 때 왜 한국의 수급상황까지 감안해야 하나. 이는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일축했다.
정부는 오히려 정유업계에 사회적 책임경영 성과를 평가해 공표하고, 원가절감 노력 강화 유도 등 사회적 책임을 지우며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지난 1월 ‘기름 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충성경쟁하듯 기업을 옥죈 정부 부처들은 시장경제 시스템을 훼손하고, 기업만 피멍이 들게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7일부터 3개월 동안 석유 값을 ℓ당 100원씩 내리기로 한 SK에너지와 S-OIL 을 비롯해 정유4사가 인하대열에 동참할 경우 정유업계는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수천억원을 고스란히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건드려도 나올 게 없는, 소득 없는 부분을 건드렸다. 차라리 전기요금을 신경 쓰는 게 나았을 것”이라며 “시장경제 아래서 정부가 너무 강하게 정치적으로 걸고 들어가니까 성과도 없고 기업만 힘들어 진다”고 말했다.
반면 기업을 압박해 온 정부는 여전히 유류세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고통분담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올 들어 석유 관련 세금이 지난해보다 1조원이나 더 걷혔고, 앞으로도 3조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 있는 만큼 유류세를 낮추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는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심각한 정도가 돼야 한다. 정상적인 정책은 아니다”며 유류세 인하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