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내일의 나야, 부동산을 부탁해

입력 2018-06-04 10:21 수정 2018-06-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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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질을 부추기는 간교한 꾀를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옛 일들이 있다. 복숭아 두 개로 용사 세 명을 죽인 제나라 재상 안영의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조조의 참모인 순욱이 유비와 여포를 갈라놓으려 내놓은 계책인 이호경식(二虎競食) 등이 대표적이다.

전장에서나 쓰이는 계략을 거론하는 이유는 요즘 수도권 아파트 청약 시장에 전쟁이 났기 때문이다.

5월 마지막 주말 1순위 청약을 받은 수도권 아파트에는 15만 명에 달하는 청약자가 몰리며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로또’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 아파트 1순위 청약 때는 금융결제원의 인터넷 청약 사이트인 아파트투유 접속이 마비돼 청약 마감을 2시간 연장하는 헤프닝도 연출했다.

이도살삼사나 이호경식, 청약대란의 근간은 한 마디로 공급부족이다. 난데없는 소리 같지만 잘 따져보면 갈등이 일어난 원인은 모두 같다. 복숭아를 하나만 더 줬어도 세 무사는 싸울 일이 없고, 여포를 유비 못지않은 벼슬자리에 앉혔다면 이간질은 언감생심이다. 청약도 마찬가지다. 입지 좋고 교통 좋고 가격 좋은 아파트가 내일 또 나온다면 어느 세월 좋은 한량이 견본주택에 종일 줄을 서며 하루를 낭비할까.

셋의 공통점은 또 있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을대을의 대결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제나라 세 용사는 2인자 안영이 팔짱낀 채 구경하는 줄도 모르고 서로를 베고 찔렀으며, 장비와 여포는(유비는 잔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조조의 숨은 미소를 모른 채 칼을 벼르며 으르렁댔다. 안영은 복숭아를 두고 싸우라 한 적이 없다. 조조는 유비에게 서주목의 벼슬을 내렸을 뿐이다.

그럼, 청약대란에 참전한 시민들은 자신이 왜 이 전투에 나와 싸우는지 알고 있을까? 정부는 아파트 한 채를 서로 갖겠다고 다투라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수요자끼리 지지고 볶은 뒤에야 내 돈내고 집 살 차례가 주어지는 요지경은 어찌된 영문일까?

‘로또 아파트’가 을대을의 싸움이라는 주장에 동의 못할 근거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10억 원이나 되는 분양가를 내겠다고 덤빈 예비 청약자들이 무슨 을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금수처 청약이 있었다 한들 그것을 막아야하는 책임 또한 정부에 있다. 공식적으로 로또 아파트 청약자격은 무주택에 재산이 없어야 하며, 3인 가족 월소득이 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부동산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 불법·편법 청약에 대한 집중점검을 벌였다고 밝혔다. 국세청을 동원해 금수저를 가려낸 뒤 철퇴를 가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그정도면 책임을 다 한 것일까. 역대 2위(1위가 궁금하시면 끝까지 읽으시라)인 8만5천여명이 몰린 미사강변신도시 아파트의 분양 물량은 고작 809가구(특별공급 제외)다. 100명 중 1명만 티켓을 거머쥐는 바늘구멍이다. 안양 평촌의 다른 아파트는 1192가구 일반분양에 5만8700여명이 청약해 평균 49.2대 1을 기록했다.

청약에서 떨어진 14만 명 이상의 신청자(중복포함)들은 전열을 재정비해 다음 전투에 임해야 할 처지다. 이들 중 ‘무주택·무자산·500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진짜 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것은 더 줘서 흔하게 만들면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를 정부는 덜 주고 경쟁하는 구조로 만들어 둔 채 구경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을 놓고 벌이는 을대을의 대결은 이제 겨우 막이 올랐을 뿐이다. 수도권은 택지공급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재건축 재개발을 막아 일어날 주택공급 중단은 동네 꼬마도 아는 이야기가 됐다. 비싼 분양가는 건설사 탓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그 비싼 분양가, 정부가 시장에 던진 각종 규제 만들던 서슬로 덤비면 못 낮추는 것인지 반문해보고 싶다. 현 정부가 다음 혹은 그 다음 정부에 공급책임을 떠넘기며 팔짱을 끼고 있는 동안 을끼리 머리 터지게 싸우는 사나운 꼴은 면하기 어렵다. 강제로 개입해놓고 책임은 시장에 안기는 편리한 구조다.

역대 1위 청약 인파의 주인공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은 무주택자 앞에 놓일지 모를 미래를 더듬어 보게 하는 힌트다. 2003년 분양한 이 아파트에는 9만7279명이 몰렸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였던 당시의 부동산 시장이 어떠했고,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늘어놓는 시간낭비는 생략한다. 대신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 써먹는 쿠키 하나 남긴다. 도곡렉슬, 김동연 현 경제부총리가 부인 명의로 소유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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