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서(75·사진) 전 통상산업부 차관이 한국에서의 모든 명예를 내려놓고 필리핀 생활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한 마디다. 박 전 차관은 꿈에서 필리핀 선교 생활을 시작하라는 목소리를 들은 후 2005년부터 벌써 9년째 현지에서 망얀족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전직 경제부처 관료 출신이 필리핀 오지에서 쌀농사꾼이 되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을 그는 ‘네가 가라, 내 양을 먹이라’는 책 발간을 통해 새롭게 풀어냈다.
박 전 차관은 제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뉴욕총영사관 경제협력국 영사, 대통령 경제비서관, 통상산업부 차관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통이다. 관료 시절 대외협상에서 보여 준 기백으로 ‘타이거 박’이란 별칭을 얻었고,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및 데이콤ㆍ파워콤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 전 차관은 이 책에서 2005년을 중요한 인생 전환의 한해로 기억했다. 은퇴 이후 필리핀 선교 활동을 위해 현지에서도 오지인 민도로섬으로 돌연 떠난 첫 해이기 때문이다. 선교의 일환으로 쌀농사를 시작했지만 처음엔 시행 착오도 많았다. 농사와 관련해선 일자무식이었던 데다, 현지에서 고용한 일꾼들도 야속하게 구는 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농사 시작 2년 후인 2007년부터는 효과가 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당제 임금 방식을 도급제로 바꾸고 직파법이 아닌, 이양법을 고집하면서 주변 농부들보다 평균 20~30% 더 생산했다. 연간 평균으로는 약 4000가마의 벼를 수확했다. 박 전 차관은 쌀농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1년 수확량 중 벼 400가마를 개척 교회와 교육 입양생들을 돕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박 전 차관은 인근 아토이 마을에서 망얀족들을 위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망얀족은 필리핀에서도 가장 빈곤에 시달리는 부족이다. 박 전 차관은 아토이 마을에서 망얀족의 처참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선교 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시 불태웠다. 망얀족에게 따뜻한 쌀밥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아토이 마을에 처음으로 예배당을 만들었다.
이후 박 전 차관은 리마스, 피난타오, 다쿠탄, 산시드로, 히낭오 등 총 12곳의 마을에 망얀족을 위한 예배당 설립을 확대해 나갔다. 일흔이 넘은 박 전 차관은 이 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지고 사고를 당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더 깊은 오지로 들어갔다. 교통수단도 두발과 물소 등에 불과했고, 건축 자재도 모두 등짐으로 옮겨야 했다. 과거 경제관료 시절 ‘타이거 박’으로 불릴 만큼 저돌적이었던 그의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이에 외부인에 배타적이었던 망얀족도 변화했다. 먼저 박 전 차관을 따르는 가하면,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필리핀 생활을 시작하면서 몸무게가 15kg 빠졌다. 하지만 건강은 오히려 40대로 돌아왔을 정도로 좋아졌다. 우리나라의 많은 고위공직자들과 재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갖은 비리에 연루돼 매스컴을 장식하는 현실 속에서 박 전 차관의 이 같은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