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을 보면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무인자동차, 스마트폰을 넘어 애플워치와 구글글라스 등 웨어러블기기의 등장 등 지금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이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요새는 어렸을 때 자주 읽었던 계몽사의 학습그림과학이 자주 생각납니다. 그 내용 중에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것도 있었는데요. 무인은행이나 영상전화, 전기자동차 등 상당 부분이 이미 지금 현실에서 쓰이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다못해 대학시절 무겁게 들고 다녔던 사전은 전자사전을 거쳐 이제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좋아졌고 편리해졌는데 오히려 살기가 팍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저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듯 싶습니다.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얘기는 그만큼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아기를 낳길 꺼린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국한된 일도 아닙니다. 일본은 우리와 이미 비슷한 상황입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혁신을 뽐내고 있지만 정작 미국인이 자신들의 황금기라고 생각하는 시기는 1945년 종전 이후 1960년대 까지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처럼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이 느려져 예전과 같은 활력을 찾을 수 없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응답하라 1994’ 세대인 제가 봐도 옛날에는 모두 가난했지만 그만큼 희망이 있던 것 같았습니다. 대학을 나오면 웬만큼 취직이 됐습니다.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어떻게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이런 평범한 코스를 밟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듭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녀를 독립시킨다는 말은 옛말입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지난 2013년 기준 3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런 이유 중 하나로 소득 불평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은 지난해 10월 보스턴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10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며 “상위 5%가 총자산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다”고 꼬집었죠. 스마트폰이니 뭐니 혁신을 한다고 해도 이런 성장의 과실을 소수가 독차지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렸던 9일 “세계 정치인들은 반드시 강한 경제성장이 더 공정한 부의 분배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불행한 이유를 소득 불평등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겠죠. 하지만 뻔히 보이는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런 문제에 태클을 걸기 위한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