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人맥] 금융연구원, 떠오르는 ‘금융권력 실세’… ‘연피아’ 전성시대

입력 2015-03-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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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서근우 신보 이사장 등 25년간 100여명 곳곳 진출

“오래~ 오래~”

지난 2013년 늦가을. 인천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는 연신 “오래~ 오래~”라는 중년남성들의 합창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간만에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때 금융권의 권력 지도가 이들로 인해 다시 그려지면서 ‘연피아(연구원+모피아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금융권은 이들을 중심으로 ‘은행-금융연구원-정부’로 이어지는 인적 네트워크의 삼각구도를 형성했다.

이날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한국금융연구원이 언론사 경제·금융부장과 은행장을 초청한 세미나가 진행됐다.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행사인 만큼 윤창현 전 원장과 수십명의 연구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간부 20여명과 함께 당시 동양그룹 사태를 뒤로하고 자리를 빛냈다.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위원들과 고시출신 관료들의 만남이었다.

척 봐도 알 수 있는 이들의 두터운 친분으로 인해 언론사 부장들과 은행장들이 뒷전으로 물러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됐다. 세미나가 끝나고 만찬장에서 한두 잔 술로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신 위원장과 윤 원장을 필두로 연피아 출신 인사들의 “오래~ 오래~”라는 건배사가 이어졌다. 금융연구원 출신이 금융당국 차관(부위원장)과 은행장, 금융공기업 수장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지금의 자리를 오래하고 싶다는 그들의 속내가 묻어났다.

◇금융연구원, 금융권 권력집단으로 부상 = 금융권에서는 한국금융연구원을 ‘금융위의 2중대’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금융위가 원하는 정책의 이론적 타당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기관의 인과관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엘리트집단이다 보니 특정학교 출신, 동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석에서 형님, 동생하는 허물없는 사이는 당연한 관계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인간관계는 연구원들로 하여금 관료사회에 대한 열망 내지는 권력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한다고 한다. 즉, 자신들이 연구한 정책들을 직접 실천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권력사회로의 진출을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금융연구원장 자리가 낙하산의 전유물로 전락한 이유가 된다. 지난 4일 소문만 무성하던 신임 금융연구원장이 내정됐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가 새로운 금융연구원장에 내정됐다. 몇 달 전부터 자천·타천으로 하마평이 무성했던 신 내정자 역시 현 정권과 인연이 깊다. 신 내정자는 지난 2012년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무엇보다 KB금융 사외이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인선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KB금융은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신 내정자 등 사외이사들이 권력화했다는 비난을 사왔던 곳이다.

금융연구원장 자리는 대대로 대선캠프 출신 인물들이 맡았다. 윤창현 전 원장도 서울시립대 교수로 이명박 대선캠프 정책자문단에서 일했다. 앞서 6대 금융연구원장에 취임했던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 역시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일하다가 인수위원회에 몸을 담았다.

금융연구원은 인사와 역할 등을 볼 때 국책기관 성격이 짙지만, 주주구성 및 운용자금을 은행이 댄다는 점에서 분명한 민간 연구원이다. 친정부 교수와 관료들이 은행 돈으로 금융권의 권력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연피아, 전성시대… 금융계 곳곳 포진 = 정부와 금융당국은 주요 정책적 이슈와 현안이 발생하면 금융연구원의 머리를 빌린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1991년 연구원 6명, 행정원 3명으로 출범했다. 설립 당시만 해도 금융권 싱크탱크 정도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현재 금융연구원 출신 연피아들은 금융권 요직마다 포진해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연구원이 개최하는 세미나 내지 포럼 참석자 명단을 행사 당일까지 확인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그만큼 참석자 명단이 바뀌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참석이 예정된 연구원이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금융회사 이사회 일정이 급히 잡히는 바람에 다른 연구원이 대신 참가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다시 말하면 연구원들의 외부 일정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금융권 이슈가 다양해지면서 연구원들을 찾는 곳이 부쩍 늘었다. 한 연구원이 여러 직책을 맡는 경우도 다반사다. 실제로 A연구원은 금융감독원 태스크포스(TF) 구성원, 금융지주 사외이사, 정부 출연 공익재단 이사 등 맡고 있는 직책만 5~6개에 이른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입법 타당성 등을 연구원에게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연구원들의 정책적 성과보다는 정찬우 부위원장, 서근우 이사장 등 금융연구원 출신 인물들이 금융권 고위직 임명되면서 금융기관들이 인맥 쌓기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각종 금융회사 사외이사 등으로 지난 25년간 박사급 인력 100여명이 진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60% 이상이 대학교수로 갔고, 금융계 현업으로도 상당수 자리를 옮겼다. 전임 초빙연구위원도 30여명이 금융연구원을 거쳤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국세청,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 주요 기관에서 파견근무를 했던 인력 역시 40여명에 이른다. 비상임 연구위원을 제외하고도 약 200명이 금융연구원을 거쳐서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한 셈이다.

◇‘연피아’ 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의 경우 대표적인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합성어)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일각에서는 연피아 출신으로 분류하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몸담은 기간은 한 달가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구원과 전직 관료의 결합은 본래 임시적 관계이기 때문에 연피아 출신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 내정자는 지난 2013년 5월 15일부터 6월 10일까지 약 한 달가량 자본시장연구원에 고문 겸 초빙위원으로 적을 뒀다.

금융권 한 인사는 “전직 금융권 고위관료가 퇴직 후 금융권 연구원과 맺는 인연이 결국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연구원 활동 기간의 길고 짧음은 본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당시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의 갑작스러운 중도 사임이 없었더라면 임 내정자의 연구원 초빙위원 활동기간은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임 내정자와 비슷한 사례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역시 다음 자리가 금융연구원 특임연구실이다. 박병원 전 은행연합회장과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이승우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 금융권 거물들이 이 특임연구실을 거쳤다.

금융연구원의 본격적인 성장은 2대 박영철 전 원장 시절이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박 전 원장은 1992년부터 6년간 재임하면서 금융연구원을 연구와 정책금융 실무를 아우를 수 있는 조직으로 키웠다. 연피아로 잘 알려진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 이건호 국민은행장, 양원근 전 KB금융연구소장, 지동현 전 KB카드 부사장, 최공필 전 우리금융지주 전무 등이 이른바 박영철 라인이다.

이들 외에도 금융연구원 출신들은 다양한 금융 영역에 진출했다. 크게 두 갈래 흐름이다. 이상제·임형석·연태훈·서정호씨 등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최공필·양원근·최흥식·이장영씨 등은 금융회사에 진출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권 ‘연피아’ 세력의 핵심인 금융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경제가 성장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경제가 커지면 금융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금융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강한 금융권력에 견제가 없다 보니 연피아 출신들이 다른 권력층과 이권 다툼의 주인공이 되는 건 당연하다. ‘모피아-금피아-연피아’로 이어지는 출신 배경과 지연·학연들이 손을 잡았다가 볼썽사나운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경우가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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