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필자는 얼마 전 한 택시에 탔다가 귀가 솔깃한 ‘오늘의 논설’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백발 희끗희끗한 택시기사가 몸소 당한 폭행 사건 이야기였다. 다음은 택시기사와 필자가 나눈 대화 내용.
필자 = “(택시에 타자마자 얼굴에 큰 멍이 든 기사를 보고) 얼굴 왜 그래요.”
택시기사 = “어젯밤 완전히 죽다 살아났어. 종로에서 남자 손님을 태웠는데 술에 잔뜩 취했더라고. 어디 가냐니까 말을 잘못해. 그러더니 언뜻 말했는데 도봉역 가자고 하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도봉역이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맞대. 그래서 거기까지 갔지. 그런데 도착해서 뒤를 봤더니 자고 있더라고. 몇 번 말을 해도 못 깨길래 고함을 쳤지.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아저씨 나한테 소리쳤느냐. 나 우습게 보냐’고 악다구니를 쓰더니 얼굴을 마구 패는 거야. 젊은 놈 힘을 당할 수 있나. 저항 한번 못했네. 근처에 도움 줄 다른 사람 없나 찾아봤는데 한밤중이라 거리가 쥐묵은 듯 하더라고. 하도 억울해서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도 했는데 뭐 이런 일 부지기수다 보니 경찰이 수사도 잘 안 하겠다 싶어 그냥 놔뒀어.”
필자 = “아프시겠어요.”
택시기사 = “견딜만 해.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뭐. 한번은 여자한테 당한 적도 있어.”
필자 = “여자요.”
택시기사 = “그때는 술 취한 여자가 간신히 몸을 가누며 타더니 목적지만 말하고 푹 쓰러져 자더라고. 그래서 일단 목적지까지 갔지. 그런데 다 왔는데도 인사불성이야. 그래서 어깨를 흔들어 깨웠어. 그런데 갑자기 성폭행범이라고 얼굴을 확 할퀴더라고. 얼굴이 오선지로 변모했지. 친한 친구가 버스기사를 하는데, 그 사람은 버스에서 스마트폰 너무 크게 하니까 못 하게 했다가 엄청 맞아서 뉴스도 탔잖아.”
지난 20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사건은 3246건, 검거된 사람은 3405명이다. 2010년 3883건, 2011년 3614건, 2012년 3578건, 2013년 3302건 등 매년 3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운전자 폭행 상당수가 경찰에 정식 접수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운전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는 것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다. 특히 폭행 상대가 버스나 택시기사인 경우 승객 수가 많으니 피해 가능성은 더 커진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운전 중인 택시·버스기사를 폭행한 사고는 지난해만 3200건 넘게 발생했다.
검경도 운전자 폭행 사고의 대형 사고화 가능성을 인식하고 2007년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개정해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경찰에 검거된 사람 3405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고작 28명. 구속률이 0.82%에 그치는 셈이다. 걸려도 구속까진 안 간다는 일종의 사회적 믿음이 생기면서 버스·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운전자 폭행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로 일부 지자체가 승객과 운전자 사이를 차단하는 보호격벽의 설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전국 노선버스의 10대 중 3대는 이 시설이 없다.
원래 맨날 벌어지는 일에는 누구나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택시·버스기사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 그러나 기사들 대부분이 나이 들어서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뒤늦게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하루하루 버텨내며 어렵게 사는 노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고 짐짓 눈감고 넘기기엔 너무 안타깝다.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뭐 대단한 것을 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머리 터지고, 얼굴에 멍들고, 때로 생명을 앗기는 것은 결단코 막아줘야 한다. 폭행자 구속률 제고나 보호장벽 설치 등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무슨 수단이든 주저할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