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는 회당 1억원의 원고료를 받고, 문영남, 임성한 작가도 회당 5000만~8000만원을 받습니다. 엄청난 원고료에도 불구하고 스타 작가를 잡으면 방송사가 우선 편성해주기 때문에 수많은 제작사들이 일부 스타 작가들에게 작품 의뢰를 하고 있습니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의 말이다.
#“열정 페이가 가장 성행하는 곳이 아마 방송 작가 아닐까요? 4대 보험 등은 꿈도 못 꿔요. 근무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아요. 오죽했으면 일하다 자살을 했겠어요. 열정만 갖고 방송 작가 일을 했다가는 생계가 어려워 떠나기 십상입니다.”라디오와 TV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20년째 일하는 김희진(43·여) 씨의 말이다.
방송 작가의 양면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그러나 방송 작가 지망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지망생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KBS, MBC, SBS 등 방송사의 단막극 공모다. 대략 4~6편을 뽑는 방송사 공모에는 매번 3000~6000편이나 몰린다.
고영탁 전 KBS 드라마국장은 “매년 편차는 있지만 단막극 공모편수는 3000편 이상이고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의 신춘문예 소설부문 공모작이 200~300편인 것과 비교해 보면 방송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방송 작가를 교육하는 교육기관에서도 이 같은 열기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예능, 교양작가 등 다양한 교육과정이 마련되어 있는 한국방송작가교육원의 경우, 면접을 거쳐 합격한 1000여명의 수강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방송사 아카데미, 대학 방송학과와 평생교육원, 백화점 문화센터 등 다양한 기관의 방송 작가 교육 역시 수강생이 넘쳐난다. 특히 남성보다는 여성, 그것도 20~30대 여성들이 수강생의 80~90%를 차지한다.
이응진 KBS 제작본부장은 “방송이 영향력이 커진데다 개성을 살릴 수 있고 자기능력 여하에 따라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방송 작가 지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 작가의 성격과 스타일, 역할, 작업 과정, 수입의 정도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오락예능, 코미디, 시트콤 등 프로그램 장르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이 중 개성과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데다 엄청난 영향력과 거액의 수입을 올릴 수 있기에 드라마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 작가는 작품을 기획해 방송사 연출자, 책임연출자 그리고 국장과 함께 기획을 의논하고 캐스팅 작업에도 관여한다. 그리고 연출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드라마 극본을 집필한다.
드라마 ‘가을동화’ 작가 오수연의 말은 드라마 작가의 입문의 길과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쇼 오락 예능, 교양,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드라마 작가의 작업 방식과 역할이 크게 다르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작가를 ‘구성 작가’로 부른다. 구성 작가는 인사말에서 시작해 진행자를 위해 구체적으로 말 한 마디를 쓰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출연자와 진행자가 연출하는 장면에 대한 개괄적인 지시와 음악 등을 중심으로 방송 원고를 쓴다.
구성 작가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출연자 섭외에서부터 새로운 기획이나 아이디어 제출, 자료조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특히 다큐멘터리 작가의 경우, 프로그램의 방향 설정에서 구성, 촬영 이후의 편집에 이르기까지 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편집 후 대본을 작성한다.
구성 작가로 처음 입문하면 보통 자료조사원 역할을 통해 경력을 쌓는다. 이후 프로그램 안의 한두 코너를 맡아 하는 ‘꼭지작가’를 거친 뒤 ‘메인 작가’로 프로그램을 책임지게 되는 단계를 밟게 된다. 구성 작가가 되는 길은 방송사나 대학부설 교육원에서 구성 작가반 교육을 받은 뒤 방송사에 추천되거나 방송사 공채를 통해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등록된 회원은 3000여명으로 이 중 드라마 작가가 500여명, 종합구성작가가 2000여명, 라디오와 번역 작가가 500여명에 이른다. 방송 작가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김수현 작가의 경우는 회당 원고료가 1억원에 달해 주말극 60부작을 했을 경우 60억원이라는 엄청난 원고료 수입을 챙긴다. 반면, 구성 작가로 처음 입문했을 경우에는 월 80만원 챙기기도 힘들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교양작가 김모(40)씨는 “방송 작가는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대표적인 직종이다. 1990년대 후반 처음 작가를 시작할 때 월 60만원을 벌었는데 지금도 막내 작가의 월급은 80만~12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수현 작가처럼 열악한 방송 현실을 딛고 스타로 우뚝 선 방송 작가들도 극본 작업을 할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린다.
“전 쉽게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대사 한 줄을 100번 고쳐본 적도 많아요.”(고 조소혜 작가), “드라마는 쉽게 쓰는 것이 아니며 생명을 걸 만큼의 치열함이 있어야 합니다.”(김수현 작가), “아이가 커서 방송 작가는 절대 안하겠다고 하네요. 엄마에게 자라면서 들었던 말은 ‘나가 놀아’, ‘조용히 해’였다는 겁니다.”(김정수 작가), “제가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세월이 키웠습니다.”(이금림 작가)
스타 작가들의 말에서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기만 한 방송 작가의 내면은 자기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수많은 방송 작가들은 자신의 극본과 대본으로 인해 대중이 웃음 짓고 감동받는 것에 보람과 소명의식을 느끼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들에게 내일의 자신은 ‘제2의 김수현’,‘제2의 이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