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어느 산에도 ‘구부능선’은 없다

입력 2015-09-02 15:13 수정 2015-09-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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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이일 산행을 다녀왔다. 말 그대로 잠을 자지 않고 등반했다. 청량리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이른 새벽 강원도 태백역에 도착해 별빛을 손전등 삼아 4시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청춘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이가 여럿 있었다. 강행군을 한 이유는 용혜원 시인의 ‘가을 이야기’ 때문이다. “가을이/거기에 있었습니다. /숲길을 지나/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사랑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좋을/우리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설렘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가을이다. 걷기를 싫어하는 이라도 이번 주말엔 등산화를 꺼내 오래된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계절을 만끽하라고 권하고 싶다. 산을 오르면 더 좋고. 세상에 만만한 산은 없지만 백두대간의 중심에 자리한 태백산 역시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 많은 이들이 오르고 또 오른다. 계곡의 물소리, 형형색색 야생초들, 산등성이를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주목. 태백산의 주목은 신비롭다. 기둥이 썩고 갈라져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해도 생명의 기운이 푸르게 솟아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은 불멸을 꿈꾸는 듯 산자락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서 있다. 태백산이 명산인 건 99%가 말라도 1%의 수분만으로 새 생명을 잉태하는 주목이 3928그루(태백국유림관리소 조사)나 있기 때문이다.

여명이 밝아 올 무렵 망경대(望鏡臺)에 도착했다. 해발 1470m에서 솟는 ‘하늘 아래 첫 샘물’ 용정(龍井)의 약수는 몹시 시원하고 달았다. 황홀한 일출을 본 후 산마루에 오르니 가을의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윽하게 내려앉은 운무(雲霧) 아래로 구분 능선이 눈부시다.

구분 능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독자가 있겠다. 구부 능선이라는 잘못된 표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부 능선에 쓰인 ‘부’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될 일본어 찌꺼기다. ‘일의 10분의 1이 되는 수’를 나타내는 ‘분(分)’을 일본어 ‘부(ぶ)’로 읽은 것이다. 올바른 우리말은 ‘분’이나 ‘푼’이다. 그러므로 ‘구분(푼) 능선이라고 말해야 한다. 산기슭으로부터 산마루까지를 10으로 봤을 때 9쯤 되는 지점의 산등성이를 뜻한다. 산기슭은 산의 비탈이 끝나는 아랫부분이고, 산마루는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 즉 정상이다.

같은 이유로 보통 바지보다 짧아 길이가 정강이 밑까지 내려오는 바지는 ‘칠부바지’가 아니라 ‘칠분(푼) 바지’라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또 ‘3부 이자’는 3분(푼) 이자로, ‘5부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는 5분(푼)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등으로 써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부’에 대한 순화어로 한자말 ‘분’보다는 순우리말 ‘푼’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잘못된 표현을 너무도 오랫동안 써 와 바르게 쓴 말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순화어를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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