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왜 평범에서 비범을 창출한 배우일까?[배국남의 스타탐험]

입력 2015-09-0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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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드라마 '펀치'로 연기자상을 수상한 조재현.(사진=뉴시스)
▲42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드라마 '펀치'로 연기자상을 수상한 조재현.(사진=뉴시스)
“어쩌면 이 상이 다른 친구가 받아야 하지 않나 끝까지 하게 된다. 저보다 훨씬 역할에 몰입했던 김래원 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었다. 그래서 제가 더 빛나지 않았나 싶다. 오래 연기하는 배우이고 싶다.”

지난 3일 MBC 신사옥에서 열린 42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펀치’로 연기자상을 받은 조재현(50)이다.

길가 중국집에서 조재현이 자장면을 먹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중년 아저씨의 자장면 먹는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다르다. TV 화면 속에선. 화제와 높은 관심 속에 방송되며 조재현에게 각종 연기상을 안겨줬던 SBS 드라마 ‘펀치’에선 권력욕에 사로잡힌 부패한 검찰총장 역을 연기했다. 극중에서 조재현은 자장면을 먹으며 내는 쩝쩝 소리에도 탐욕을, 추악한 음모를 담는다. 조재현은 그런 연기자다.

일상에서 만나면 평범, 그 자체인 그가 연기의 공간, 즉 TV, 스크린, 연극 무대에 들어가면 비범이 된다. 조재현의 비범한 연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강력한 공감의 파문을 일으킨다. 엄청난 흡인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짜장면 한 그릇 묵자”라는 대사 한마디로 수많은 시청자를 소름 돋게 한‘펀치’는 조재현이라는 연기자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개혁가로 어제의 박제된 인물이 아닌 오늘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정치적 담론까지 제기해준 사극‘정도전’은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잘 인지시켜준다.

▲짜장면 먹으면서 내는 소리에도 권력과 탐욕을 담은 '펀치'의 조재현.
▲짜장면 먹으면서 내는 소리에도 권력과 탐욕을 담은 '펀치'의 조재현.

‘정도전’과 ‘펀치’를 통해 다시 연기자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대중과 전문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조재현. 그는 요즘 영화감독, 딸과의 함께 일상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패밀리 예능 프로그램(‘아빠를 부탁해’)출연, 연극극장 운영 등으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쓴다. 당연히 몸이 힘들다. 그래도 기분은 좋단다.

“‘정도전’과 ‘펀치’극본이 워낙 좋았어요. 개연성과 함께 우리 사는 세상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메시지와 의미가 있었어요. 이 두 드라마에서 악역조차도 시청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을 끌어내는 요소들이 많았어요. 극본의 힘으로 성공한 드라마 덕을 보는 거지요.”

하지만 시청자와 대중은 안다. 조재현의 뛰어난 연기력이 없었으면 개혁적인 정치가 정도전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권력 상층부로 진입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태준 검찰총장도 우리에게 의미의 파문을 일으키는 살아있는 인물로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조재현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드라마 '피아노'.(사진=SBS)
▲조재현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드라마 '피아노'.(사진=SBS)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가 고등학생 때 누나가 보여준 연극 한 편으로 연기자로 꿈으로 선회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연극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KBS 공채 탤런트라는 길을 거쳐 TV 연기자가 됐다. 1989년 ‘야망의 세월’를 통해 탤런트로 데뷔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스크린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그는 시선을 끌지 못했다. 다만 배우의 예술이라는 연극무대에서만 그에게 환호를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전문가와 일부 마니아 팬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누나가 보여준 연극을 보며 배우가 매우 멋있어 보여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9수만에 KBS에 합격했고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생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미련해서 꾹 참고했다.”

빼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조재현이라는 연기자의 본질을 몰랐다. 하지만 조재현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감독 김기덕과 드라마 PD 오종록이다. 드라마 ‘신화’에 출연한 조재현에 주목한 김기덕은 원래 구상한 배우 캐스팅의 무산으로 그를 영화 ‘악어’ 에 출연시켰다. 이후 김기덕 표라는 영상과 주제를 구현한‘야생동물 보호구역’ ‘섬’ ‘나쁜 남자’ 등에 조재현을 연이어 출연시켰다. 마치 김기덕 감독 영화의 전속배우처럼. 조재현이 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조재현은 누구누구 감독의 틀 속에 갇힐 수 없는 배우”라는 말로 조재현을 표현한다. 조재현은 김 감독 말처럼 어떤 틀로 규정지을 수 없는 연기력을 가졌다.

뛰어난 연기력에도 관객과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한 조재현은 2001년 운명적인 작품을 만났다. 오종록 PD의‘피아노’다. 삼류 깡패로 사랑하는 여자의 자식들에 애절한 부정(父情)을 절절하게 연기해 수많은 이의 가슴과 눈을 적셨다. 조재현에 대한 뒤늦은 찬사가 이어졌다. 어쩌면 저렇게 완벽하게 연기를 하느냐고. 그리고 조재현은 세칭 말하는 스타가 됐다. “사랑한데이”라는 조재현의 ‘피아노’대사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피아노’는 저를 스타로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지만 족쇄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많은 사람이 조재현 하면 ‘피아노’를 떠올렸다. 그걸 벗어나기 위해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수많은 작품을 했다.”

‘피아노’이후 ‘눈사람’‘계백’‘스캔들’‘뉴하트’‘정도전’2015년‘펀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목포는 항구다’‘한반도’2014년 ‘역린’까지 많은 영화와 ‘에쿠우스’ ‘경숙이, 경숙 아버지’ ‘민들레 바람 되어’그리고 2015년‘그와 그녀의 목요일’까지 적지 않은 연극 작품에서 강렬한 캐릭터부터 일상적 배역을 오가며 조재현의 광대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조재현을 스타로 만든 오종록PD는 “조재현은 강렬한 카리스마가 드러나는 캐릭터에서 평범한 인물까지 극과 극을 오가지만 시청자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는 연기자이며 어떤 역을 맡겨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연기자 중 한사람이다”라고 평가한다.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리고, 때로는 분노하게 하고 때로는 감동하게 하는 조재현의 연기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굶주림이다. 편하게 살아도 되지만 나는 뭔가를 계속해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늘 굶주려 있다.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의 가장 좋은 점이 그 점이다. 콤플렉스 역시 나를 연기자로 발전시켜준 원동력이다. 어릴 때 가난했고 지방대 간 것, 9수 만에 방송사 들어간 것, 키가 작은 것…수많은 콤플렉스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작용했다.”

연기자라는 한 길을 걸을 것 같았던 조재현이 2009년 행정가로 변신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2009년 경기도 영상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2010년에는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이사장을 맡은 것이다. “많은 작품을 했지만 잘못 선택해 ‘피아노’ 이후 나는 어느새 그저 그런 배우가 돼 있었다. 분출할 곳을 찾다 위원장직 제안을 받고 수락했다.” 이 때문에 요즘에도 정치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리고 그의 연기의 고향인 연극 기획자로 그리고 극장 운영자로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금은 성공적인 연극 브랜드로 자리 잡은 ‘연극열전’을 기획해 오랫동안 이끌어왔고 서울 대학로에 ‘수현재 극장’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일부 사람과 대중매체가 수백억대 극장 빌딩 갑부라고 지칭한 데 대해 조재현은“대학로는 제 고향이자 어렸을 때 연극을 보며 꿈을 키웠던 곳입니다. ‘수현재 극장’은 연극을 상시로 공연한다. 연극을 해서도 돈 벌 수 있고 잘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연극인은 배고픈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한다.

▲팔색조 연기력을 가진 조재현.(사진=영화 '역린'스틸컷)
▲팔색조 연기력을 가진 조재현.(사진=영화 '역린'스틸컷)

조재현을 행정가이자 문화기획자보다는 ‘빼어난 배우’로 인식하는 대중이 훨씬 많다. 그가 연극무대에서 TV 화면에서 그리고 영화 스크린에서 팔색조 연기를 펼칠 때 가장 조재현답기 때문이다. “저 역시 여러 직함 중에 ‘배우’라는 직함이 제일 마음에 들고 죽는 순간까지 안고 갈 것 같아요.”조재현 본인 역시 대중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배우로서의 존재감에 가장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요즘 50대 가장으로서 딸(혜정)과 함께 ‘아빠를 부탁해’를 통해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뚝뚝한 조재현의 모습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50대 아버지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청자들도 조재현의 모습에 “나하고 같네”라며 가장 많은 공감을 표한다. “TV에 나온 모습이 나의 일상이다. 다정다감하지 못하고 표현도 제대로 못 한다. 요즘 딸과 관계가 프로그램 하면서 변했다.”

연기자로서 여전히 하고픈 것이 많아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고 싶다는 조재현은 2001년 ‘피아노’촬영장이었던 부산의 한 식당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했던 이야기를 14년이 흐른 2015년 서울 대학로 극장에서도 다시 강조한다. “좋은 연기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뽀네트’의 네 살짜리 주인공 티비졸의 연기처럼 계산도 의도도 없고 철저하게 삶을 보여주는 연기를 하고 싶다.” 조재현은 이런 배우다.

(‘법원사람들’ 9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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