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가운데인 시월 들어 꽤 여러 장의 청첩을 받았다. 그중 처음으로 참석한 결혼식은 좀 특별했다. 평일 저녁 7시에 시작했고, 파티 형식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예식을 즐겼다. 특별한 건 예식이 아니라 청첩이었다. 편지봉투 대신 작은 상자로 건네받은 청첩은 캔 모양이었다. ‘웬 캔맥주?’ 하고 살펴보니 신랑·신부의 모습 아래로 이름, 날짜, 장소 등이 화려한 서체로 쓰여 있었다. 지금 그 청첩은 저금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청첩을 읽다 ‘장녀’라는 표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초청한 사람은 분명 1남1녀를 두었다. 그러니 ‘숨겨둔 딸이 또 있나’ 하고 의심할 수밖에. 남동생이 있어도 딸이 하나인 경우에는 그냥 ‘○○○의 딸’로 쓰면 된다. 장녀는 둘 이상의 딸 가운데 맏이로, 큰딸, 맏딸과 같은 말이다. 한마디로 장녀는 여동생이 있는 경우에만 쓸 수 있다.
그러면 외동딸과 고명딸은 어떻게 다를까. 외동딸은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귀엽게 이르는 말이다. 외딸과 같은 의미로, 아들이 있든 없든 딸이 하나인 경우를 가리킨다. 아들 없이 딸만 하나일 때는 무남독녀(無男獨女)라고 한다. 고명딸은 아들이 여럿 있는 집의 외동딸이다. ‘고명+딸’의 형태로, 음식에 빗대어 맛깔스럽게 표현한 멋진 우리말이다.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맛을 더하는 고명처럼 아들들 사이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의미다. ‘양념딸’이라고 표현하는 지방도 있다. 그런데 딸이 많은 집의 외아들을 ‘고명아들’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여자 형제가 있어도 아들이 하나인 경우엔 ‘외아들’이라고 한다. 딸이 없는 집안의 외아들은 무녀독남(無女獨男)이 아닌 ‘무매독자(無妹獨子)’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명딸이라는 말에는 ‘딸은 고명처럼 구색 갖추기로 있어야 좋다’는 뜻이 담긴 것은 아닐까.
예식 중간에 아버지 지인이 말을 걸었다. “선친을 많이 닮았네요. 참 좋은 분이셨는데….” 잘못된 호칭으로 당황스러웠지만 분위기상 웃음으로 넘겼다. 선친은 돌아가신 자기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남의 아버지는 ‘선대인, 선고장, 선장’이라고 해야 한다. 또 돌아가신 남의 어머니는 ‘선대부인’이다. 가끔 “선친께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조퇴를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데, 이는 엄청난 불효다. 살아 계신 분을 돌아가시게 만든 셈이다. 이럴 때는 부친, 엄친이라고 해야 바르다.
결혼식, 장례식 등 애경사에 참석하다 보면 빠른 변화와 인연 속에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생에서 성공한 이는 하나같이 품위 있는 말을 사용한다. 말에는 인격이 투명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행사가 많은 시월, 예의 바르고 품위 있는 말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향기 나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