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주식시장을 탈출한다”며 월가를 떠났던 마이클 델 델 최고경영자(CEO)가 다시 돌아왔다.
‘타고난 장사꾼’ 소리를 들으며 개인컴퓨터(PC) 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일군 델 CEO가 이번엔 클라우딩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하고자 자진해서 떠났던 월가와 다시 손을 잡은 델 CEO. “한 물 갔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델 제국’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릴 적부터 ‘사업가의 본능’을 숨기지 못했던 델 CEO는 치과교정 전문의였던 아버지 뒤를 이어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1983년 미국 텍사스대 의과대학에 입학하던 날 그는 자신의 차 안에 의학서 대신 PC 3대를 싣고 갔을 정도. PC 장사꾼 기질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대학 기숙사에서 PC 업그레이드 키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델은 의대에 입학한 이듬해인 1984년에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피시즈 리미티드(PC’s limited)’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그는 회사 이름을 ‘델 컴퓨터 코퍼레이션(Dell Computer Corporation)’으로 바꾸고 오늘날의 ‘델 제국’의 시작을 알렸다.
단돈 1000달러로 창업한 델은 2000년대 초 명실공히 업계 1위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델 CEO가 도입한 공급망관리(SCM) 중심의 ‘물류혁신’이었다. 델의 성장 기반인 ‘직접판매(직판)’도 SCM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CM 체계는 델 본사와 부품업체, 조립공장, 물류업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으로 제품 수요 예측, 재고 파악을 가능하게 했다. 또 소비자가 물건을 배송받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어 델의 SCM 체계는 이후 업계의 혁신을 주도했다.
델은 사업 초기부터 직판 모델을 도입하고 중간 유통과정을 과감히 포기했다. 유통비용을 줄인 델은 경쟁사보다 10% 저렴한 제품을 내놓으며 컴퓨터의 가격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창립 8년 만인 1992년, 델은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7세의 델 회장은 500대 기업 대표 중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스마트폰, 태블릿의 등장으로 컴퓨터 수요가 줄고 중국 기업 등 늘어난 경쟁사들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2013년 델 CEO는 1988년 나스닥 시장에 입성한 지 25년 만에 상장폐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는 과거 그가 “실패를 겁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무언가를) 배울 기회이기 때문”이라며 강조한 도전정신을 몸소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세계적인 스토리지업체 EMC 인수와 함께 월가로 돌아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사모투자전문회사인 실버레이크와 함께 EMC를 670억 달러(약 76조6000억원)에 인수한 그는 “양사의 합병으로 델은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두고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MC 인수를 통해 델 CEO의 사업가 본능을 다시 확인했다”며 “그는 사업가로서 목표를 향해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텍사스의 팻 무어해드 애널리스트는 “마이클 델은 매우 주도적인 사람임과 동시에 논리적인 사상가”라며 “그는 확실히 수익을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EMC 인수로 델은 경쟁사 휴렛팩커드(HP)를 제치고 클라우딩 업계 1위로 거듭난다. 전문가 대다수는 델과 EMC의 만남이 업계 흐름을 바꿔놓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니얼 입스 FBR리서치 투자분석가는 “PC시장을 제패했던 델의 공급망과 세계적인 클라우딩 기술을 보유한 EMC의 만남은 기업 컴퓨팅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것이며 델이 또다시 IT 업계의 거물이 되려고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하드웨어 제조업체인 델이 EMC의 기술을 얼마나 잘 흡수할지가 관건”이라며 “인수를 통해 떠안게 된 EMC의 부채 500억 달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