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지게 된 기쁨에서 출발한 편지는 곧바로 이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어떠했으면 하는 부분으로 이어졌다.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는 세상,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너나없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평화와 번영의 기운이 넘치는 세상 등이었다.
이런 세상을 만들려면 두 가지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인간의 잠재적 역량을 계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이 그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이 일들의 내용과 추진 방안을 설명했다. 이를테면 확대된 연결망을 기반으로 세상의 그 누구도 치료받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또 개개인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개인별 교육을 강화하는 일 등이었다.
그리고 바로 하이라이트, 이 모든 것을 위해 그가 가진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내어 놓겠다고 했다. 4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2조 원이나 된다.
기부 금액이 워낙 커서 그랬을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이 ‘52조 원 기부’에 쏟아졌다. 언론도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돈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첫째, 그가 말하는 공적 가치들이었다. 모든 존재가 다 평등하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인종ㆍ성별ㆍ국적과 관계없이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키울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 등을 적고 있었다. 우리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둘째, 이러한 공적 가치들을 마치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특히 불우한 환경 때문에 기회를 잃을 수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부분은 더욱 그랬다. 무엇이 이 젊은이로 하여금 이러한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셋째, 거의 전 재산을 기부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갓 30을 넘은 젊은이이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데도 그런 결심을 했다. 툭하면 사재를 털어 넣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감옥도 가곤 하는 기업환경, 그래서 평소 사재를 쌓고 또 쌓아야 하는 우리 형편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도 분명히 저커버그와 같이 남의 일이나 나랏일을 내 일로 생각하고,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독립투사들이 그러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내민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다 그러하다.
그러나 그리 큰소리칠 일이 아니다. 기부만 해도 준조세 성격의 기부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 ‘보험’ 성격의 기부가 주류를 이룬다. 자원봉사 등의 비금전적 기부 또한 마찬가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자선구호단체(CAF:Charities Aid Foundation)가 발표한 기부지수로 조사 대상국 135개국 중에서 60위, 더 할 말이 없다.
문제다. 국민의 권리의식은 커지고 국가는 공적 가치를 지킬 만한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부분 시민사회가 스스로 그 간격을 메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어 ‘세계 60위’인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기부를 많이 한 ‘기부천사’를 대통령이 만나주는 등의 ‘퍼포먼스’를 하고, 기부한 사람의 동판을 새겨주는 정도로는 될 일이 아니다.
고민은 더욱더 근본적이어야 한다. 불안한 경제사회 구조가 원인인지, 공동체 의식과 주인의식을 파괴하고 있는 중앙집권적 구조와 권위주의 문화가 그 원인인지 살펴봐야 한다. 아니면 숨 쉴 여유도 없게 만드는 긴 노동시간과 불완전한 사회안전망이 그 원인인지 따져봐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 또한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저커버그의 편지가 우리에게 주는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