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스크램블 톡] 미국, 왜 지금 사회주의인가

입력 2016-02-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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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8일(현지시간) 유세 중인 버니 샌더스. 블룸버그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8일(현지시간) 유세 중인 버니 샌더스. 블룸버그

“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다.”

2016 미국 대선판에 혜성처럼 등장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독주를 깬 인물이 있다. 버니 샌더스(74) 상원의원 이야기다.

샌더스는 대선 경선 2차 관문인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주(州)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60.40%의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37.95%에 그친 클린턴에 승리했다. 이번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만 놓고 보면 샌더스가 압도적이다. 이미 결과도 판가름난 바나 다름없어 보인다.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는 샌더스는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 급기야 이들을 가리켜 ‘샌더스 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유독 강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심각한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샌더스는 최저 임금의 대폭 인상과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 등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보험의 의무화와 공립학교의 무상화 등이 그가 내건 공약의 핵심이다. 엄밀히 따지면 양극화 문제 해소 및 소득의 재분배 문제다.

1%에 대한 99%의 분노를 해소해주겠다는 샌더스의 공약은 팍팍한 살림살이에 찌든 서민들의 설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암울한 미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2013년에는 부유한 가정의 상위 3%가 하위 90%를 합친 부의 2배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 국세청 조사에서는 납세액 상위 400명이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지난 20년새 2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층의 소득은 증가한 반면 다른 모든 그룹의 소득은 정체돼 있었다는 의미다.

소득 격차와 빈곤이 가져다주는 거라곤 절망 뿐이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젊은이들이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현실. 희망이 사라진 사회에는 범죄가 만연, 미국에서 묻지마 총기사건이 끊임이 없는 이유일 거다.

사실 샌더스가 제안한 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돈줄과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전국민을 의료보험에 가입시키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다 공화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샌더스의 손을 들어주는 건 왜일까.

샌더스의 지지 기반인 밀레니얼 세대(2000년 이후 성인 세대)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속에서 살아왔다. 대공황 당시에는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걸 사회가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란 것도 이해했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최근의 어려움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불황을 이겨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이것이 정치적 문제라는 걸 사회가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빚을 진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에 나와서도 고생문이 훤하다. 정규직은커녕 단기 일자리 찾기도 빠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내집 마련의 꿈을 꿀 수나 있을지. 이런 소박한 꿈을 막고 있는 게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경제’라는 비난여론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편에 서 준 것이 샌더스다. 그는 경제 게임의 정점에 있는 월가에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공무원 경력도 없는 74세 노장의 호기로 볼 수도 있다.

현실성 있는 젊은이들은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확실한 ‘좌파’인데, 좌파가 대통령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도 진보 성향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당선 후 그 꼬리표를 떼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샌더스가 젊은이들의 교주로 떠오른 건, 잠시라도 좋으니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를 공감하고 대변해달라는 건 아닐까.

미국 대선은 이제 대장정의 막을 겨우 올렸을 뿐이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 하나로 앞날을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있다. 기존 정치인들이 경선 레이스 초반에 맥을 못추는 건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전에 반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대로 가면 미국 대선은 아웃사이더 돌풍으로 시작해 아웃사이더 돌풍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 막말제조기 억만장자 아니면 민주적 사회주의자,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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