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처선은 7명의 왕을 보필했던 신하다. 김처선은 직언을 잘했다. 이러한 직언은 왕을 줄곧 화나게 만들었는데, 형벌을 받아 쫓겨났다가도 궁에 다시 돌아온 걸 보면 그의 직언이 바른 소리이자 필요한 소리이긴 했나보다.
하지만 연산군에게 직언은 소용 없었다. 음란함이 극에 달한 연산군에게 “이렇게 지내다간 오래 국왕으로 있지 못할 것이 원통하다”는 진심 어린 간언에 연산군은 화가 나 김처선의 다리와 혀를 잘라 죽였다. 김처선은 ‘배움에 따른 행동’보다 ‘목숨’이 중요했던 다른 신하와 그렇게 달랐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역사는 반복되듯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조선시대의 역사를 보고 있는 것 같다. ‘2015, 소년원 도가니 사건’, ‘학교재단 인사의 횡령 정황 폭로’ 등 내부 고발자를 차별하는 행태가 그렇다. 어느 하나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이미 결과는 알 수 있다. 연산군의 ‘간언에 대한 무시’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누구나 쓴소리는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과거의 왕들이 김처선의 간언에 화가 나서 쫓아냈다가도 다시 궁으로 오게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조선시대 ‘사간원’은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담당한 기관이다. 간언의 중요성을 미리 깨닫고 국정 내부에 만든 사간원은 2016 대한민국의 한 사람, 기업, 더 나아가 정부에도 단점을 장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세상엔 뛰어난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사람은 뛰어난 언변가도, 뛰어난 글쟁이도 아닌 진심 어린 ‘간언’을 ‘목숨’보다 중요시 여기는 한 명의 김처선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겐 목숨 걸고 간언하는 김처선이 있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김처선이 살 만한 나라인가. 진정한 혜안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목숨 걸고 간언할 수 있는 제2의 김처선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