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여 전 당시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이 염창동 당사 인근 중국집에서 점심을 하며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 때로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이었다. 옆 테이블에선 열린우리당 출입 기자들이 탕수육과 팔보채 등 요리를 먹고 있었다. 그들을 한 번 둘러보던 이 부대변인은 매번 짜장면만 사줬던 게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출입기자들과 자주 식사 자리를 마련한 이 부대변인이 고마웠다.
그는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당을 위해 헌신했지만, 몇 푼 안 되는 활동비 나오는 게 전부였다. 호남 출신이라 홀대 받았고, ‘근본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더 자세를 낮추며 정치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지내면서 형편을 좀 펴나 했더니 19대 총선 때 다시 광주 서을에 출마해 낙선했다. 될 듯 될 듯 했지만, 끝내 호남 민심이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 번은 주머니에 차비가 없어 신림동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온 적도 있다고 한다. 아내에겐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러던 그가 2014년 순천·곡성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18년 만에 호남에서 탄생한 새누리당 의원이 됐고, 지난 4·13총선에서도 다시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보수정당 최초 호남 출신 당대표까지 됐다. 이는 정당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성과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감회가 새로울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승리에 도취할 시간조차 없다. 영남지역을 최대 지지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에서 이정현 대표를 선택한 건 그만큼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크단 뜻이다.
이 대표가 탄생한 건 옆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고, 친박이라는 계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롯이 본인의 힘으로 오른 자리는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당의 화합과 통합이다.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은 국민이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특히 이번에 새로 구성된 지도부에는 내년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관리할 막중한 책무가 놓여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계파구도가 계속된다면 공정한 관리는 물 건너간다. 벌써부터 반기문 대세론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목소리부터 불식시키는 게 이 대표가 할 일이다.
또한 집권 후반기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과 성공을 위한 충실한 역할도 요구된다. 일단 당청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원만한 협력 관계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청와대와 정부의 주문을 소화만하는 새누리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대 당대표들이 하나같이 외쳤지만 지키지 못했던 당청 간 ‘수평적 관계’를 이번에는 정립해야 한다. 대통령이 잘못했을 때 직언하고, 청와대와 정부가 민심을 거스른다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성공시키는 밑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