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눈썹과 입꼬리를 잔뜩 치켜올리고 화가 난 건지 의기양양한 건 지 뜻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치 뭔가가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지난 6~7일 미국 플로리다 주 팜비치의 호화 리조트 마라라고에서 나란히 앉은 주요 2개국(G2) 정상의 모습은 이랬다. 이들이 커튼 뒤에서 합의한 ‘새로운 형태의 대국 관계’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이는 2013년 6월 미·중 정상회담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당시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지 3개월 만에 가진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와 마주한 시 주석은 미소는커녕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미 국가안보국(NSA)에 의한 국민의 비밀감시계획 ‘PRIS계획’의 존재를 폭로시켜 미국 측의 중국 사이버 공격 비판과 인권문제 비판을 원천봉쇄했다. 이에 오바마의 태도는 180도 전환, 아시아 재조정 정책으로 바뀌어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당시 회담에서는 시 주석이 갑(甲)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중 정상회담 후 긴박하게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시 주석이 ‘을(乙)’이 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인다. 트럼프가 중국과 혈맹관계인 북한 문제를 빌미로 중국까지 옥죄면서 포커 페이스인 시진핑조차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시 주석은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을 도발해온 트럼프의 진의를 파악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고, 미국과의 신형 대국 관계를 인상짓는 게 두 번째 목표였다. 이는 올가을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의 권력 투쟁과 자국 내 여론형성에도 영향을 줄 터였다.
하지만 회담 전부터 주도권은 트럼프에 있었고, 이는 회담 후까지 이어졌다. 트럼프는 회담 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대한 무력 압박을 행사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것이 허풍이 아니라는 건 두 정상의 만찬 중 일어난 미군의 시리아 공격을 통해 확인됐다. 만찬 중 미군의 시리아 공격을 전해들은 시 주석은 트럼프 앞에선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만찬을 허둥지둥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 대응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이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중국 관영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리아를 공격한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다만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챙긴 것도 적지 않다. 우선, 중국은 트럼프로부터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던 ‘하나의 중국’을 인정받았다. 또한 중국산 수입품에 고액의 관세를 부과하고 환율조작국으로 인정한다던 공약을 트럼프가 철회한 것 만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공갈과 립 서비스는 미국 쪽에 중국을 흔들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북한 문제에 있어서 미국에 양보와 타협하면 언제든 중국과 정면으로 대결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여실이 보여준다. 트럼프 정권의 대외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이슬람국가(IS)와 시리아 문제, 북한 문제이며, 남중국해나 대만 문제, 무역 문제 등을 이용한 중국과의 대결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던 셈이다.
북한 문제는 미국이 진정으로 김정은 제거를 목적으로 경제·군사 제재를 취할 경우, 중국이 북한을 후방에서 지원하지 않는 것이 성패를 결정한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가 보낸 메시지의 마지막 마무리가 시리아에 59발의 토마호크 발사였던 것인 만큼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진핑이 ‘썩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핵 문제라기보다는 미국과 중국 간 군사력 과시 문제이며, 한반도에서의 그 존재감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지배력이 강해진다는 의미에서 미·중 패권 다툼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 미국연구센터의 스인훙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시진핑은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북한 문제에서 제재 강화 등의) 준비를 이미 했다. 아마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마지노선은 견지할 것이다. 즉 북한은 존재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의 잠재적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